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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Aug 22. 2022

항상 시작이 가장 어렵다, 뜨개질 (1)

취미일기, 첫 번째 취미 ~ 뜨개질 ~

시작이 어렵다. 처음이 어렵지 나중은 별거 아니다. 이 말을 가장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취미는 바로 뜨개질이다. 일단 시작만 하면 되는데 그 시작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시작은 했다 치더라도 2단, 3단으로 넘어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제대로 2단을 쌓아 올리기 위해 몇 번이고 풀었다 뜨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신경질이 나서 놔버리는 날도 부지기수.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즐기고 있는 취미가 무어냐 물으면 나는 뜨개질이라 답할 것이다.


뜨개질에 대한 로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아마 손재주가 좋았던 외할머니의 영향일테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어린 나를 길러주신 외할머니는 코바늘 하나로 모든 걸 다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촘촘하게 꽃무늬가 들어간 조끼에서부터 가전제품을 위한 레이스 덮개까지. TV를 보며 찬송가를 들으며 외할머니의 손은 춤추듯 예쁜 것들을 지어냈다. 친할머니는 외할머니가 선물한 레이스 숄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계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꺼내어 두르곤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시며 사돈의 솜씨를 칭찬했다. 바늘보다 조금 굵은 코바늘로부터 화려한 무늬가 짜여 나오던 모습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외할머니의 딸인 엄마는 대바늘로 무언갈 만들곤 했다. 외할머니만큼 '뚝딱뚝딱'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보기만 해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굵은 실로 포근한 무늬의 스웨터를, 장갑을, 목도리를 엄마는 아주 오래도록 뜨곤 했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위해 굵은 꽈배기 무늬가 들어간 겨자색 카디건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어울리는 커다란 단추를 찾으러 진시장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온갖 부자재들이 가득하던 시장은 마치 별천지 같았다. 할아버지는 커다랗고 멋진 금색 단추가 달린 카디건을 막내며느리가 만들어준 옷이라며 몹시 아껴 입으셨다.

 

처음으로 했던 뜨개질은 목도리였다. 너무 하얗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누렇지도 않은 보드라운 아이보리색 목도리. 부평 시장의 아무 뜨개방이나 들어가서 실을 고르고 대바늘을 사고 가장 기본적인 대바늘 뜨개법인 고무 뜨기를 배웠다. 시작 코를 모두 뜨개방 아주머니가 잡아주셔서 나는 반복적으로 실을 걸고 뜨기만 하면 됐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아주 기다란 목도리가 갖고 싶었기 때문에 하염없이 목도리를 떠나갔다. 실을 세 볼 가까이 썼는데도 목도리가 좀처럼 길어지지 않아서 결국은 포기하고 처음 실을 샀던 뜨개방에 마무리를 부탁하러 갔다. 아주머니는 내 목도리를 보자마자 뭘 이렇게 길게 떴냐고 했다. 목에 겨우 한 번 감기는 정도인데, 별로 길지도 않은데, 생각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나에게 목도리 한쪽 끝을 꼭 잡고 있으라고 하더니 반대편 목도리 끝을 마구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목도리는 자꾸만 자꾸만 길어져서 내 키만 해졌다. 실을 잡아당기는 힘, 일명 텐션 조절을 할 줄 모르는 초보 뜨개러였던 터라 너무 힘을 주어 뜨개질을 했던 것이다. 꽉 조여져 있던 매듭들 사이사이로 여유가 생기면서 목도리가 길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목도리를 두 번 세 번 감고 외출하면 목에 땀이 날 정도여서 그 겨울은 아주 든든했다.


겨우 고무 뜨기 하나 할 줄 알면서 대바늘 뜨기를 마스터한 사람처럼 굴었지만 목도리 말고는 아무것도 만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중요한 사실. 대바늘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수학적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 특히 공간지각 능력이 많이 요구된다. 대바늘 뜨기는 뜨개질로 직물을 만들어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금의 오차라도 생기면 결과물이 틀어지거나 완성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아주 꼼꼼해야 하고 그리고 끈기 있어야 한다. 꼼꼼함과도, 끈기와도 거리가 먼 나는 대바늘을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잊었다.


뜨개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뜨개질을 하던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모습을 동경했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이 따스해진다. 난로를 둘러싸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제각기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모습. 마치 재야의 숨은 고수들 같다. 한 손에는 귀이개 같이 생긴 바늘을 쥐고 한 손에는 실을 감고, 아마 직접 만들었을 뜨개옷을 입고 뜨개 담요를 덮고서 쉼 없이 웃고 떠드는 여유로움. 그 모습이 나는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뜨개질의 진수는 줄 달린 500원짜리 대바늘로 하는 뜨개질이 아니라 바늘 하나로 모든 걸 만들어내는 코바늘 뜨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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