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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Aug 22. 2022

항상 시작이 가장 어렵다, 뜨개질 (2)

취미일기, 첫 번째 취미 ~ 뜨개질 ~

코바늘 뜨기를 처음 배웠던 것은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 무렵, 평소 자주 드나들던 핸드메이드 공방 겸 편집샵 ‘도모’의 원데이 클래스에서였다. 가장 기본인 짧은 뜨기 기법으로 정사각형 티코스터를 만드는 수업이었다. 원데이 클래스의 선생님인 봉봉 언니가 뜬 코스터는 그 모양이 자로 잰 듯 일정했는데 내가 뜬 코스터는 삐뚤빼뚤, 정사각형은커녕 거의 사다리꼴이었다. 뭐 그럼 어때. 내 마음이지. 내가 쓸건데. 코수도 제대로 세지 않고 마음대로 뜨개질을 하는 불량 수강생인 나를 어르고 달래 코스터가 제대로 된 모양을 갖출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날 봉봉 언니는 진땀을 뺐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내고 나니 성취감이 어마어마했다. 어떤 취미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중간에 그만두기 일쑤였는데, 모양이야 어떻든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했더니 또 다른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고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나는 본격적으로 봉봉 언니의 기초 코바늘 클래스를 수강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언니의 수업을 들으러 가면 알록달록한 부자재들과 귀여운 색깔의 실, 그리고 간식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진 테이블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퇴근 후 들으러 가는 수업이었는데도 수업이 있는 요일만 기다렸다. 가끔 중급반 수업을 듣고 있는 유진 언니가 합류할 때도 있었다. 중급반은 종이실로 모칠라 백을 뜨는 과정이었는데 커다랗고 입체적인 가방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부러웠다.


처음에는 코수를 새며 한 땀 한 땀 떠나가느라 속도가 엄청 더뎠는데 자꾸 하다 보니 코수를 세지 않고 모양만 봐도 대충 어디쯤인지 짐작이 됐고 그때부터는 나도 뜨개질을 하며 언니들과 조금씩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수다를 떨며 뜨개질을 해나가다 보면 실수하는 구간이 반드시 생기는데 그때는 과감하게 풀어주면 된다. 우리는 그 행위를 ‘푸르시오’라고 불렀는데 봉봉 언니는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실을 풀고 다시 뜨개를 시작하는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푸르시오가 두렵지 않다는 건 이제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 거니까, 이제 하산해도 됩니다!’


정말 언니의 말처럼 나는 이제 뜨개질이 두렵지 않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틀렸더라도 실수를 바로 잡고 다시 시작하는 것. 나는 다시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나는 뜨개질을 하며 배웠다.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일이 얼마만큼 심지가 굳어야 할 수 있는 일인지 말이다.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데, 두려운 이유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도 뜨개질을 한다. 오랫동안 무언갈 붙들고 있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으므로 늘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것들만 만든다. 주로 코스터나 수세미류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내가 만드는 뜨개 작품은 아직도 엉성하다. 화장실의 비누 받침은 여전히 아래는 길고 위는 짧은 사다리꼴을 하고 있고 반나절 꼬박 투자해 만든 수세미보다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수세미가 더 크고 더 예쁘고 더 두꺼워 거품도 풍성하게 잘 난다.


그래도 나는 아직 뜨개질을 한다. 겨드랑이에 땀이 차도록 집중한다. 그렇게 무언갈 만들고 나면 걱정과 근심이 모두 매듭 하나하나에 엮여 봉인되는 기분이 든다. 마치 걱정인형처럼.


모든 일이 그랬으면 좋겠다. 틀린 지점에서 풀어내면 엉키지도 않고 원래 상태로 주욱 풀려나오는 실처럼,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다시 짤 수 있는 뜨개질처럼, 모든 일이 그렇게 단순하고 쉬웠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다시 시작하는 일일 것이다. 끊임없이 시작하고,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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