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일기, 두 번째 취미 ~ 수영 ~
물속에서 하는 운동인데도 수영을 하면 땀이 난다는 사실, 알고 있는지.
초등학생 때 나는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그맘때 태권도도 배웠고 스피드 스케이팅도 배웠는데 뭐가 먼저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너무 몸치라서 태권도는 다니다 애들 여럿 잡을 뻔했고, 스피드 스케이팅은 빙판에도 못 올라가게 하고 고무바닥 위에서 계속 자세 연습만 시켜서 그만뒀다.
수영은 그래도 꽤 오래 다녔던 것 같다. 접영까지 다 배우고 나서는 자유형을 주종목으로 삼았는데, 어느 날은 수영 선생님이 자기가 뒤를 쫓아갈 때니 잡히지 말라고 해서 죽을힘을 다해 호흡도 참아가며 헤엄쳤었더랬다. 레인 끝에 도착해서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엄마도 수영을 같이 다녔었나 보다. 어쩌면 그때 내가 그만두지 않고 계속 수영을 했다면 박태환 보다 먼저 이름을 날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혜성처럼 등장한 수영 선수 박태환의 주종목이 자유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도 나름 선수였다. 초등학교 대표로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다. 자유형 50미터였는지 100미터였는지, 하여튼 자유형으로 나갔다. 순위는 3위. 선수도 3명. 그래서 지금도 누가 수영할 줄 아냐고 물어보면 아주 뻔뻔하게 '선출'이라고 답한다.
외할머니와 함께 수영장에 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할머니는 건강하셨던가보다. 실내 수영장이 의례히 그렇듯 그때도 50분 수영, 10분 휴식 규칙이 있었는데 모두가 물 밖으로 나간 그 휴식 시간에 혼자 레일을 누비고 다니곤 했다. -근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기억 속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쟤가 내 손녀고, 완전히 물개라며 주변에 자랑을 하셨었다. 아직도 그 장면이 가끔 꿈에 보인다.
20대 때는 큰맘 먹고 비싼 수영복을 샀던 적도 있다. 수영복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냥 아레나 매장에 갔다. 짙은 초록색으로 허벅지 라인에 노란 줄이 들어간 원피스 수영복이었다. 10만 원도 넘게 줬던 것 같다. 미쳤지. 너무 예뻤던 그 수영복은 아쉽게도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한참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러 다니던 때라 늘 슈트 안에 착용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작아져서 버렸다.
수영모는 초등학생 때 다니던 수영장에서 선생님이 주신 걸 아직 간직하고 있다. 본인이 쓰는 거랑 같은 디자인이었는데 그걸 받고 한동안 설레기도 했었다. 수경도 그 선생님이 쓰던걸 따라서 샀는데 그것도 아직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수영과의 연이 다시 시작된 건 2019년. 첫 직장의 첫 해. 직장 생활에 조금 적응하고 이제 뭔가 취미 생활을 시작해도 되겠다 싶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계절이었다. 당시 경쟁률이 꽤 높았던 구민체육센터 직장인반 수영 강좌 등록에 성공한 것이다. 접수처의 의심스러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중급반을 등록하고, 설레던 첫 수업 날. 초급반부터 전문반까지 레인마다 물속에 정렬하고 서서 준비 체조를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10여분 간의 준비운동을 끝내고 나면 벌써 약간 몸이 더워졌다.
매일매일 선생님이 지시하는 대로 수영을 하고, 자세를 교정받았다. 다이빙 수업을 하던 날, 너무 오랜만이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 없으면 뛰어들지 말라고 했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면 크게 다친다고. 원체 겁이 없는 나는 그래도 한 번 해보겠다며, 조금 망설인 끝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영으로 레인 중간에 와서야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나에게 선생님이 소리쳤다. "처음 아니구만!"
수영을 하는 날은 출근하는 순간부터 즐거웠다. 수영복을 미리 챙겨놓고 출근했다가 돌아와서 옷만 편하게 갈아입고 바로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을 마치고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 덜 마른 머리카락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파고들면 그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취미 생활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존경스러웠다. 퇴근하고 오면 완전히 녹초가 되는데, 침대랑 한 몸이 되어서 떨어질 수가 없는데, 무슨 체력이 어디서 솟아나길래 저렇게 '갓생' 살 수 있는 걸까. 나는 죽어도 저렇겐 못 살아.
하지만 수영을 다니면서 알았다. 직장인의 취미 생활은 체력이 남아 돌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활력을 얻기 위한 것임을 말이다.
수영을 다녀와서는 기분이 들떠 매번 그림일기까지 그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무슨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릴까, 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즐거워했다.
오래가진 못했다. 하다 보니 조금 게을러졌고, 겨울에는 재계약을 고민해야 했으며, 강습에 빠지는 날도 자꾸 생겼다.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던 바이러스까지 전국을 휩쓸며 체육센터는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이사를 해서 체육센터와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수영이 그립다. 다른 취미 생활도 좋지만 운동만큼 성취감을 주는 게 없는 것 같다.
올여름 제주 한달살이를 하며 바다 수영을 실컷 했다. 물에서 좀처럼 나올 생각을 않는 나에게 아빠는, 아빠 친구가 하고 있다는 바다 수영 모임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바다 수영 동호회에 대해 조금 찾아보니 무척 재밌어 보인다. 파도를 거스르기 위해 착용하는 호흡기도 아주 낯설게 생겼다. 새로운 취미의 발견으로 또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