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이 Oct 03. 2023

파랑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아주 특별한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멋진 구두를 신고 기깔나는 정장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해외를 돌아다니는 그런 사람. 새삼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 그렸던 나의 미래에는 당연하게도 아이가 없었다.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냥 몰랐다. 그런 것도 모를 만큼 어렸다.


나는 못하는 게 없지만 그렇다고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없다. 뭐든 중간에 힘이 빠져 마무리가 엉성하다. 꼭 초보자의 뜨개질 같다. 어떻게 어떻게 모양은 만들어지는데, 사실 중간중간 실도 꼬이고 구멍도 몇 군데 나 있다.


거의 완벽한 삶이다. 안정적으로 보장된 직장에 매일 출근하고, 그리 늦지 않은 나이에 결혼해서 나를 아껴주는 배우자와 매일 즐겁다. 나는 매일 감사한다.


하지만 엄마의 살쪘다 한 마디에 모든 게 무너지고 만다. 나는 겨우 마음먹은 참이었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아이를 갖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모두 해줄 수 있다는 걸 깨닫고서야 아이를 가져도 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임신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이렇게 살찌면 애도 못 가져. 사람들이 뒤에서 욕해.


어느 부분이 더 아팠는지 모르겠다. 임신을 꼭 해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태도? 살쪘다는 말 그 자체? 사람들이 사실은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시 아이를 낳기가 두렵다. 늘 그랬듯 처음엔 열심히 잘하다가 사실은 엄마 같은 나로 돌아와서 엄마처럼 굴게 될까 봐 무섭다. 나를 닮아서 뚱뚱한 아이가 되면 어떡하지. 외할머니처럼 엄마도 내 아이를 뚱뚱하다고 면박 주면 어떡하지. 이 굴레와 고통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도 되는 걸까. 내가 아이의 마음을 망가뜨려버리면 어쩌나.


그보다 내 마음이 지금 너무 힘들다. 엄마가 급한 대로 이거라도 먹으라며 자신이 먹던 다이어트 한약을 줬다. 먹었다. 속이 안 좋아 힘들고 짜증이 난다. 남편은 괜히 내 기분을 살피느라 전전긍긍이다. 그것도 미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건 나였을지도 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