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볼로냐의 작은 카페와 그녀에 대한 기억
볼로냐의 작은 카페 Bar Mira는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온기였다. 카푸치노 한 잔과 피스타치오 크림이 든 작은 꼬마 크로와상 하나 혹은 두 개를 주문하고, 약 30분에서 1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2022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석사를 마치고 2~3개월이 지난 무렵이었다. 볼로냐에 있는 사회적 기업에서 3개월간 일할 기회가 생겼고, 큰 고민 없이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곳에선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출퇴근을 하는 시간도, 계약서의 내용도, 오늘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런 작은 혼란들 속에서 나만의 루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작업장에 가기 전 Bar Mira에서 보내는 아침이었다.
길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소박한 카페 앞에는 한 두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외부에 놓여 있고, 내부로 들어서면 커피를 내리거나 들어오는 손님에게 미소를 건네는 주인 Mira 아주머니가 있다. 이곳에서의 아침은 마치 온천에 몸을 담그는 듯한 평온함이 있었다.
« 본 조르노, 운 카푸치노 에 운 꼬르네또 삐꼴로 알 삐스따끼오 쁘레고 »
어설픈 이탈리아어로 주문하면 Mira 아주머니는 언제나 귀담아 들어주고 정확히 내어주셨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메뉴를 시키는 내가 그녀의 일상이 되었는지, 어느 날부턴 아주머니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환하게 웃으며 먼저 물었다.
« 카푸쵸랑 피스타키오 크로와상이지? »
외지에서도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미라와 나는 커피와 빵을 주고받는 단순한 관계였지만, 그 일상의 작은 순간 속에서도 나는 그녀에 대한 특별한 우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Mira와 그녀의 가게에 들어설 때면 매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이 가게를 열고 닫으며, 매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했을까. 가게를 들어서며 마주하는 Mira의 건강한 미소에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경외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매일 아침 나는 커피를 마시러 간 것 이상으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기쁨이 있었던 것 같다.
12월은 볼로냐에서의 마지막 날들이었다. Mira와 나는 대단히 특별한 관계도 아니고 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그녀의 시야에서 불쑥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아마 그녀는 내가 더이상 카페에 들리지 않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가끔 “그 손님, 요즘 안 오네” 하고 지나가는 생각 정도는 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 프랑스에 살고 있으며 예술을 한다는 것, 매일 아침 같은 메뉴를 주문하며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이 근처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 정도고, 나도 Mira에 대해 아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Mira가 만들어준 아침 시간이 볼로냐 생활 중 가장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이었기에, 이곳을 떠나기 전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만큼은 전하고 싶었다. 요약된 마음을 작은 편지를 써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 이탈리아어로 옮겼다.
마지막으로 카페에 들른 아침도 평소와 같았다. Mira 아주머니는 여느 때처럼 나를 반겨주고, 그녀가 카푸쵸와 꼬르네또를 내어주면 나는 늘 하던 대로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 시간이 되면 빈 커피잔과 접시를 그녀에게 돌려주고 계산을 한다.
계산을 마친 후, 나는 스르륵 그녀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내가 왜 갑작스레 종이를 건네는지 그녀는 알턱이 없다. 우리는 그만큼 서로의 개인적인 맥락에 대해 알지 못하는 멀고 가까운 사이다. 대충 조각난 이탈리아어 단어들과 손짓 몸짓을 버무려 읽어보시라는 의미를 보여주자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곤 찬찬히 편지를 읽어줬다.
편지를 읽던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이건 예상치 못한건데…
Mira는 나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손자였던지, 강아지였던지, 가끔 보여주던 그녀의 핸드폰 사진 속에 나도 담기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던 이웃 주민이 우리가 함께 나란히 서서 서로를 감싸 안은 모습을 찍어주었다. 내 핸드폰으로도 한 장 남겼다. 나는 일터로 떠났고 몇일 뒤 볼로냐를 떠났다. 그 기억이 내가 미라와 나눈 교류의 마지막이다.
종종 볼로냐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미라가 보고싶고,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준 그 자리들이 그립기 때문이다. 평소와 같이 아침에 들리면 그녀가 환한 미소로 맞아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믿음이 있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조금 운이 좋다면,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평소처럼 “카푸쵸 에 꼬르네또 삐스따끼오?” 하고 물어줄지도 모르겠다.
Mira는 잘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건강하게 카페를 지키고 있을까? 그녀를 떠올릴 때매다 볼로냐의 그곳을 여전히 지키고 있을 그녀의 안녕을 빈다. 너무 늦지 않게, 그녀를 다시 찾아갈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