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서 말하기를 잘 못하는 편이었다. 느낀 걸 그대로 말하면 사람들은 당황했고, 돌려서 말하면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서 돌려말하기를 배워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혹은 두번 세번 지나치게 돌려서 말했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농담이랍시고 얼굴이 왜 이렇게 달덩이같아졌냐고 했다. 그 자리에선 모두가 같이 웃었지만 그날 밤, 친구집에서 이루어진 술자리에서 친구는 상처받았다고, 종종 그럴 때가 있었다고 술기운을 빌려 털어놓았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20대 초반이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란다. 웃자고 한 소리였으며 모두가 같이 웃었기에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조금씩 언어 습관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꾸준히,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안 하려고 하는 편인데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솔직하게 말하는게 뭐가 나빠?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나쁠 때가 많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최고라는 발상은 매우 유아적이다. 중요한 것은 내 의도와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일이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내가 친구를 보고 달덩이같다고 말한 것은, 친구에게 내가 격없이 농담을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친한 사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꺼낸 말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굳이 내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대화라는 건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것이기에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건 대화라고 할 수 없다. MBTI가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T라는 것을 내세워 무례함을 포장하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소위 말하는 쌉T로서 무척 기분이 나쁘다.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해서, 혹은 자의식을 내세워서 명확한 의사 전달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답답하게 여겨 왔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말로 글로 표현하는게 무척 어렵다는 것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거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세요 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대다수니까.
사람과 함께 하는 동물의 의사 전달은 무척 명확하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들은은 다채로운 눈빛과 행동으로 원하는 바를 똑똑히 제시한다. 심지어 나름대로의 예의를 지켜 단계적으로 점점 강력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가령 나의 고양이는 내가 자고 있을 때 배가 고프면 작은 소리로 운다. 내가 깨지 않으면 내 얼굴을 앞발로 살짝 누른다. 발톱은 절대 세우지 않는다. 가끔 이 감촉을 느끼며 깨는게 너무 좋아서 가끔 저녁때 밥을 채우지 않고 잘 때가 있다. (밥그릇이 텅 빈 상태는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그래도 깨지 않으면 촉촉한 콧잔등을 내 얼굴에 잔뜩 비벼대며 정확하게 귀에다 대고 운다. 깨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솔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것은 결코 명확한 의사 전달이 아니다. 나는 네가 좋아서 친해지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대체로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대체로.
오해를 종종 사는 성격이라 솔직하게 부연 설명을 덧붙일 때가 있다. 가령 누군가 내일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저도 보고 싶었던 건데, 같이 갈래요? 라고 묻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아, 부담스러우시거나 혼자 보는게 좋으시면 가감없이 말해주세요. 제가 원래 거리감을 못 재고 사람들한테 친한 척을 잘 해요. 이런 류의 솔직함 또한 유아적 발상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고 이 말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의 방어 기제는 자꾸자꾸 이런 말을 덧붙여야 한다고 우긴다. 아, 쟤는 원래 저렇구나 하고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과 나 혼자서 지레짐작하며 저 사람이 나를 부담스러워하나? 라고 오해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나는 누가 나를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우면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몰랐으니까. 나와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서 내 뒷담을 하고 있었다는 걸. 내가 싫으면 그냥 멀리하면 되지 왜 앞에선 친한척 하고 뒤에선 욕을 했을까. 사실 멀리해도 잘 모르긴 한다. 얼굴 한번 봐요, 차 한 잔 해요, 했을 때 이번엔 시간이 안되서 다음에 봐요! 하는 답변을 들으면 나는 정말로 시간이 없나 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세 번쯤 반복되면 그제서야 이 사람이 나를 피하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제가 혹시 불편하신가요? 라고 물어본 적도 있다. 상대는 당연히 아니라고 했지만 지금도 진실이 무엇이엇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를 만나기 싫으면 다음에 제가 연락드릴게요! 라고 선수를 쳐 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먼저 당신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나의 이런 점이 불편하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을 아주 좋아한다. 그런 의사 표현을 해도 내가 화내거나 서운해하거나 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믿고, 자신의 의견이 내게 닿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와 친한 동생은 나의 특정 단어 선택이 조금 불편할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고, 나는 그걸 말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럴 수 있으니 네 앞에선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후로도 몇년째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고마워. 미안해 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수긍한다. 수긍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답한다. 차 한잔 해요, 식사 한 번 해요, 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지 않는다. 정말로 바로 약속을 잡고 싶을 때만 얘기한다. 나의 솔직함은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애정이다. 나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싶다. 상대를 존중하고 싶기때문이다. 당신도 나를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