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 맑고 추움
군중 속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다양한 에너지 속에서 나는 그들 중 하나가 된다. 팝핑 캔디가 터지는 입 안으로 들어와 빙글빙글 돌아가는 새파란 입천장을 바라보며 요동치는 혓바닥 위에 올라타서 영원히 캔디가 톡톡 터질 것이라 믿고 그 감정에 취하게 된다. 그 감정이 절정에 달한 순간을 무어라 표현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기쁨 ,환희, 혹은 그와는 좀 다른 무엇.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끄럽고, 어지럽고, 기가 빨린다고 한다.
흔히들 싫어할 만한 장소를 하나 떠올려본다. 주말의 대형 백화점. 바깥은 춥고 내부는 덥다. 옷은 무거워 짐짝처럼 느껴지고 땀을 흘려 등이 찝찝하다. 목이 마르지만 음료수를 손에 드는 것은 번거롭고 누군가와 부딪혀 쏟기라도 할 까봐 겁이 난다.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지만 모든 장소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인기가 있는 맛집은 줄을 서야 하며 세일을 하는 상품은 이미 모두 품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온 것은 당신의 의지였다. 물론 동행인의, 아이의, 가족의, 연인의 의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됐든 이곳에 온 것은 당신 자신의 선택이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목줄을 채워 끌고오지 않았다. 저마다 지친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에게 기가 빨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 기를 빨아들이는 것은 무엇이며, 빨아들인 기는 모두 어디로 가는가? 백화점이 빨아들이는 것은 돈과 시간일 뿐이다. 당신의 기는 당신이 잘 간직하고 있으면 그 어디에도 가지않는다. 다만 주변이 몹시 소란스러워지면 어느 순간 혼이 빠질 수는 있다.
나 역시 사람이 많은 곳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람이 많아서 정말 싫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려했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약간 당황했다. 내가 정말 싫은 순간은 두개다. 하나는 출퇴근길의 지옥철안. 사실 그때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관찰하며 온갖 잡생각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에 너무 오랜시간동안 서 있어서 다리가 아프다, 덥다, 남의 살갖이 닿아서 기분나쁘다, 이런 환경이 아니라면 나름대로는 견딜만하다. 두번째는 메탈 콘서트에서 덩치 큰 사람사이에 끼었는데 다같이 슬램을 즐기는 그 순간이다. 과거에 어쩌다 보니 콘, 혹은 피어 팩토리의 팬무리 한복판에 끼게 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여기까지 쓰면 나를 정말 괴짜 혹은 변태처럼 보는 시선도 있을 것 같아 첨언하자면 평일 낮의 아무도 없는 카페도 무척 사랑한다.
아무리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 해도 사람들의 목적은 대체로 정해져있기 마련이다. 백화점이라면 쇼핑 또는 나들이를, 공원이라면 산책을, 기차역이라면 여정을 위해 우리는 그 장소로 향한다. 그 기운을, 에너지를 나는 사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득이 되지 않는 크고 작은 어떤 것을 위해 일부러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 사랑스럽지 않은가.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고, 모두의 목적이 일치하는 순간 이는 극에 달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거대한 종 앞에서, 싸늘한 바람이 부는 흐린하늘의 바닷가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가 된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마음을 모아 하나의 메세지를 외친다. 그 중의 하나가 되는 순간은 소중하다. 쉽게 경험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오늘은 아주아주 춥고, 하늘이 새파란 날이었다. 위험하니까 조심하자고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오랜 시간이 걸려 지하철을 탔고 수많은 인파를 지나쳐 나는 달려갔다. 앞쪽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통제중이라는 말에 나는 친구기다리고 있다고 했고, 나를 막으려던 아저씨는 허허 웃으면서 그러면 가야지,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들 친구가 많아하고 나를 보내주었다. 1시간 가까이 나를 기다려준 친구에게로 나는 달려갔다. 얼싸 안고 안부를 묻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살면서 굳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법한 순간도 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빛을 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히 간직해오던 빛을 꺼내 모두에게 나눠주었고 산란한 빛이 눈 앞을 어지럽혀 아무것도 볼 수 없어지는 그 순간, 풍선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쁨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나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