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8일 맑음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살면서 단 한번도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11살 때 일기장에 죽고 싶다고 써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걸게 만들었던 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같은 줄 알았다. 비염이 심해 코로 숨을 쉰 적이 없어서 모든 사람이 입으로 숨을 쉬는 줄 알았던 것처럼.
정신과가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만큼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정확히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더 많이 보기는 했다. 사는 이유를 모르겠고 친구도 없고 가족과도 친하지 않으니 적당히 살다가 안락사를 하고 싶다는 글은 인터넷을 조금만 돌아보면 너무나 많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 그냥 지금 죽는게 낫지 않나?왜 안 죽는 건지, 그렇게 억지로 사는게 더 고통일 것 같은데.
나의 죽고 싶다 또한 살고 싶지 않다와 비슷했다. 다만 나의 경우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였다. 이렇게가 가리키는 상황은 다양했다. 하지만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죽을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발버둥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에 나는 머릿속에 틈을 주지 않기로 했다. 뭐든지 했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을 최대한 만들지 않았다. 가장 무서운 건 잠들기 직전이었다. 잠이 들기 위해 눈을 감는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서는 죽음과 관련된 모든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라디오나 티비를 켜놓고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날 라디오 진행자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이 방법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죽고 싶은 동시에 죽는게 무서웠다.
병원을 다닌지 이제 10년 정도 되었다. 중간중간 내 멋대로 약을 끊은 적도 많았고 그때마다 끔찍한 두통에 시달렸다. 지금은 그게 세로토닌 리바운드라는 걸 알기에, 절대로 마음대로 중단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세로토닌 생성이 잘 안되는 나로서는 좀 억울하다.
요 두어달간, 많이 우울했다. 끊임없이 죽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꾸준히 약을 먹어서인지 예전보다 겁이 조금 줄어들었다. 몇년전 동남아에 캐녀닝을 가서 5미터 정도 높이의 폭포에서 강제로 뛰어내려야 할 일이 있었다. 도저히 풀쩍 뛰어내릴 자신이 없었던 나는 눈을 꼭 감고 코를 꽉 쥐고 앞으로 걸어갔다. 허공에 발자국을 남긴 채 떨어지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놀랍게도 그 경험 이후 번지점프와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또 다시 허공을 디뎌보고 싶어진 것이다. 난간이 없는 곳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맘이 허해서 뭔가를 자꾸 샀지만 당연히 채워지지 않았다. 내가 살 수 있는 것 중 가장 비싼 것은 자동차였다.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그만뒀다. 돈도 돈이지만 강을 건너다 엑셀을 밟고 싶은 충동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선천적으로 충동을 잘 억제하지 못하기에 이 또한 아주 조금은 억울하다.
살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거기서 어떻게 의미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걸 찾으려 하다가는 출가하거나 미쳐버리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저 살고 싶지 않은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죽고 싶어졌다. 내가 아니면 살수 없을 나의 고양이와, 이미 자식을 둘이나 먼저 보낸 엄마를 위해서라도 아직은 죽을 수 없다. 하지만 그 후엔?
다시 필사적으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할 무렵, 다시 나의 정신을 뒤흔드는 사건이 생겼다. 나의 노력같은 건 무의미했다. 나의 존재 또한 무의미했다. 잘 하려고 했던 일은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고 나의 자존감은 바닥보다 아래로 추락했다.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어쨌든 나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지든, 사라지든, 아직은 살아있다.
제인구달은 사후공개를 전제로 촬영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지구에 온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신이 당신의 역할을 모르든, 찾지 못했든. 아름다운 지구에 있을 때 당신의 최선을 다해라. 희망을 잃지 마라. 희망을 잃으면 아무것도 안하게 된다. 당신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심수봉은 백만송이 장미의 가사에 다음과 같이 썼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뜬금없는 소리처럼 느껴지겠지만 내가 존재하는 것은 사랑의 결과이고, 여기까지 온 것 또한 사랑의 힘이다. 사랑 덕분에 나는 끊임없이 변했고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내가 죽고 싶거나 말거나와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은 사실이고 진실이다. 나의 고양이를, 엄마를, 사랑한다. 좋은 사람들과 어리석은 나 자신 또한 사랑한다. 이 역시 내가 죽고싶거나 말거나와 상관없이 명백하다. 나의 강점 중 가장 큰 것은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
세미콜론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나는 내 스스로의 의지로 문장을 끝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