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명호
항상 같은 옷을 입은 듯한 일상이 이따금 속살을 보여주는 때가 있다. 기능적이고 본능적인 것으로만 알았던 먹는 행위가, 걸어가는 동작이, 춤추는 것이, 소리 내거나 노래 부르는 것이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영적인 근원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 갈 때 숨어 있는 하나님을 만난 듯 환희를 경험한다. 일상이 어떻게 예배일 수 있는지, 삶이 회복되는 것이 무엇인지 지리한 반복 끝에 그 이면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일상 속에 깃든 의미들을 더듬어가며 월경이라는 여성의 일상 속에서도 놀라운 의미들을 찾을 수 있었다. 융 학파의 정신분석가인 Clarissa Pinkola Estes에 의하면 고대의 여성들에게 생리 기간은 구별된 공간에서 명상과 기도를 하는 신성한 시기로 여겨졌다고 한다. 생리 기간에 종종 찾아오는 무거운, 하강하는 듯한 정서적 변화들은 깊은 명상과 기도에 잠길 수 있는 통로였던 것이다. 그렇게 구별된 공간에서 홀로 (alone)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됨 (all-one)을, 통합을 깊이 경험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alone이라는 단어가 all one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여성의 몸에 대한 발견을 해가면서 이유명호 한의사님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꽁지머리 한의사로 불리는 선생님은 별명만큼 발랄하고 대담하고 유쾌한 분이다. 나는 한의사님의 책 ‘안녕 나의 자궁’을 통해 처음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길로 내가 속한 회사의 동아리 활동과 접점을 찾아 선생님께 강연 요청을 드리며 처음 인연이 닿았다. 내게 선생님은 질병만이 아닌 삶을 다루는 의사이다. 신체적인 측면의 삶만이 아닌, 사회적인, 정신적인, 정서적인 삶도 관찰함으로써 질병을 입체적으로 다루어 가신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선생님의 활동 반경이 병원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호주제 폐지를 위해 앞장서 왔으며, 한살림 자문위원으로, 한국 여성장애인연합 고문으로, 그리고 여성과 아동 건강에 대한 책을 저술하시며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신다. 여성의 몸과 관련한 질병들은 결국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더 큰 제도와 사회정치적인 사안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생리를 일컫는 월경(月經)은 성경, 불경, 역경처럼 최고의 가치를 지닌 생명의 경전이라는 뜻이다. 할머니에게서 엄마로, 엄마에게서 딸로, 피로 영원히 이어지는 몸으로 쓰는 경전이라고… 그런데 세계 곳곳을 다니며 오히려 생리 기간 중에 출입을 금하는 사원과 교회를 많이 본다. 또한 생리기간에 여성들의 특권으로 허락된 구별된 공간이 이제는 깨끗하지 않은 몸을 차별하는 공간으로 전락한 모습을 더 많이 본다. 한때에는 신성함이 깃든 여성의 일상이 더러운 일상으로 변화된 현실이 조금 씁쓸하다. 여성의 일상이 예배로 회복되기 위해서 여성의 몸에 깃든 지혜들에 다시금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