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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a Jul 12. 2018

[친구] 호모 심비우스

사카린

나에게 사카린은 다양한 얼굴로 아로새겨 져 있다. 2007년 베트남 출장을 한 주간 함께했던 그에게서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 같았다. 장발에 붉은 반다나를 두르고 음악을 가까이하는 그에게서는 밥 말리와 같은 라스타파리안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 걸어 다니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들을 던지는 그는 실천적 규범을 가르친 아리스토텔레스의 한 면모를 짐작하게 하였다. 또한, 일상적인 대화 도중 툭툭 던지는 코란의 구절들을 들으면서는 경험적 세계와 초월적 세계간의 거리를 좁혀 주는 수피가 연상되었다. 이렇듯 그는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라스타파리안의 감성과 소요(逍遙)학파의 지성과 무슬림의 영성을 조화롭게 살아 내고 있었다.


이질적인 것들을 융화시켜 나가는 것이 그의 특기인 것일까? 그의 내면이 그러하듯, 그는 다양성의 공존을 사회 속에서도 그려 가고 있다. 태국 출신의 사카린은 2003년부터 다른 국적의 청년들과 2주간 함께 먹고 자고 봉사하는 워크캠프를 경험하게 되면서 다양성이 가져다 주는 풍요를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대학교를 입학한 후에도 몸에 각인된 이 기억 때문에 학교 수업은 시시하기만 하다. 강의실에서의 배움보다 워크캠프를 통한 배움들이 삶과 훨씬 밀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2004년에 달라(DaLaa: 태국어로 '꽃'이라는 뜻)라는 NGO를 만들어 태국에서 직접 워크캠프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그가 경험했던 다양성의 풍요가 태국의 시골 지역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되었다.


3년전부터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공존뿐 아니라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태국 남부에 위치한 사툰 (Satun)의 망그로브 숲 속에서 자연을 스승으로 삼은 대안 교육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자연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생태계의 각 개체들은 함께 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는 어린 친구들에게 이 단순한 공생의 진리를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Klong Toh Lem이라는 대안 학교가 탄생하게 된다. 학생들은 교재가 아닌 자연에서부터 모든 배움을 시작한다. 한 학급에는 다른 연령의 학생들이 함께하고 때때로 찾아오는 다양한 국적의 봉사자들로부터 더 큰 세계를 자연스럽게 배워 간다. 또한, 이 학교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가르침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핵심 가르침은 '평화'이다. 불교도가 95%를 차지하는 태국에서 살아가는 무슬림 공동체이기에, 분쟁이 종종 발생하는 태국 남부에 위치했기에, 공존과 평화는 이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가치들이다.


최재천 교수는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고 했던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말을 인용하며 섞여야 건강하고 섞여야 아름답고 섞여야 순수하다고 한다. 자연은 그렇게 다양성을 통해 진화해 온 것이라고… 이러한 측면에서 태국의 작은 마을에서 연령, 인종, 종교, 생태계의 어울림을 만들어 가는 사카린의 노력들은 또 한번의 진화를, 또 한번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장을 만들어가는 노력이리라.. 호모 심비우스 - 공생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시 회복해 가는 이 공동체의 미래를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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