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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Nov 15. 2020

그냥 예쁘기보다 아름다운 아우라를 가진 사람

나의 이상형


"넌 이상형이 뭐야?" 


어느 모임에서든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항상 나오는 질문. 그럴 때마다 대답하기 참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이러한 성격이 좋아"라고 말하면 "그래 봤자 얼굴 이쁘면 장땡이잖아"라며 가식 덩어리라는 핀잔을 주거나, "이러이러한 외모가 좋아"라고 하면 "넌 얼굴만 보는구나"라며 한순간에 외모 지상주의의 선봉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아무리 정교하게 준비된 답변으로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들, 이상형대로 만나지는 것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나. 면접도 아닌데, 이게 뭔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나의 이상형을 고백하는 것은 적다 보면 몰랐던 내 이상형의 실체가 조금은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고, 이미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의 이상형이 만천하에 공개된 적이 있어서다.



대학생이던 나는 TVN <스타특강쇼>라는 프로그램 방청권이 생겨 친구와 방송국에 갔다. 알고 보니 연예인 안선영이 연애를 주제로 강연을 한단다. 제작진은 스튜디오에 입장하기 전, 자신의 이상형을 적으라며 투표용지 같은 종이를 나눠줬다. 촬영이 시작됐다. 귀를 쫑긋하며 그녀의 강연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안선영나의 이름을 부르더니 별 생각 없이 종이에 적은 나의 이상형을 또박또박 읽어줬다. '그냥 이쁘기보다 그 사람만의 아름다운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 내가 존중해주고 나아가 존경할 수 여자.' 여기저기서 빵빵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진지한 이상형이 이렇게 코믹한 거였나 싶어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피식피식하며 재차 물었다. 


"어떤 게 아름다운 아우라인가요?"


"아우라라는 게... 예쁘면 아우라를 풍길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기 계발 열심히 하고 자신만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 자신만의 아우라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나 공수처 설치를 놓고 벌이는 찬반 토론도 아닌, 고작 나의 이상형 하나인데. 이게 뭐라고 카메라 앞에서 구구절절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보세요. 남자들도 이런 여자 좋아한다니까요." 마지막에서야 그녀는 내가 불쌍했던지 나의 해명에 맞장구 쳐주긴 했지만 뭔가 공개적인 놀림감이 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뭐지.


이상형이 커밍아웃된 지 어느덧 5년. 당시 나를 제외한 모두(내 옆의 친구까지도)가 킥킥했지만 사실 지금도 내 이상형은 큰 틀에서 변하지 않은 듯하다. 그놈의 아우라 타령을 집에 비유해보면, 모든 사람에게는 '생각의 집'이 존재한다.  집으로 초대받아 들어가 보니 그녀가 꾸며 놓은 생각과 철학이 배치되고 장식돼 있다.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가 집안 곳곳에 녹아 있고, 그녀의 손때가 묻어나는 장식과 가구들이 갖춰져 있다. 다음번에 또 놀러 가고 싶고, 그 집의 인테리어를 따라 배우고 싶어지는 그런 집.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녀만의 집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아름다운 아우라'가 있는 집을 가진 집주인에게 매력을 느낀다. 반면 번쩍번쩍한 건물 외관을 보고 큰 기대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텅 비어 있다면 아무래도 다시 찾고 싶은 집은 아니다. 외모가 특출 나지만 그만의 색깔이 묻어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이상형을 주저리주저리 쏟아냈는데 사실은, 어쩌면, 나야말로 '나만의 아우라'를 가지지 못한 놈이라서 이상형이라는 명목으로 가지지 못한 나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는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이상형 같은 사람을 만나려면 나부터 내가 바라는 사람이 돼야 하거늘. 제길, 그럼 나의 아우라는 뭐지? 이상형에서 시작된 생각이 돌고 돌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사고 회로에 또다시 봉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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