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르바 Feb 20. 2021

사라진 성욕은 어디로 갔을까

다이어트가 가져온 신체 변화

삼십 평생 다이어트는 처음이었다. 예상치 못한 변화들을 경험했다. 크게 세 가지. 첫째, 비염 알레르기가 완치됐고, 둘째로는 여드름이 없어졌다. 마지막은 성욕이 사라졌다. 


어릴 때부터 비염 알레르기를 평생 달고 살았다. 서너 시간 만에 티슈 한 통을 코 푸는데 다 썼다. 엄마는 비염 치료로 유명해 전국에서 찾아온다는 한의원에 데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코에 빨대만 한 대침을 박았다. 콧구멍 깊숙이 침이 들어갔다. 피가 홍수처럼 흘러내렸다. 하지만 비염은 멈추지 않았다. 한의학의 실패였다. 


이번에는 양의학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코 안쪽의 중간 뼈(비중격)가 휘어 일자로 펴는 수술을 받으면 낫는다고 했다. 큰 걸 바라지 않았다. 한쪽 콧구멍만으로도 숨 쉴 수 있으면 충분했다. 전신 마취와 부분 마취 가운데 택하라고 했다. 부분 마취 선택권이 있다는 자체가 견딜 수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전신 마취를 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장고의 고민 끝에 부분 마취로 정했다.


인생 최악의 선택이 될 줄은 몰랐다. 마취 주사를 맞자 코에 얼얼해졌다. 의사 선생님이 망치와 펜치(?)를 들고 나타났다. 어디에 쓰려는 걸까 생각하는데 점잖던 의사 선생님은 망치를 들더니 코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코뼈를 칠 때마다 칭칭 울리는 망치 소리가 들렸다. 진동이 얼굴 전체로 지진처럼 퍼졌다. 이번엔 펜치였다. 끝날을 콧구멍 양쪽에 집어넣었다. 끼익 끼익 소리와 함께 휜 코뼈를 폈다. 가구 수리하듯 30분 넘게 망치질과 펜치질이 이어졌다. 


수술이 끝나자 연필만 한 휴지심을 양쪽 콧구멍에 넣었다. 삼 일 후에야 휴지심을 뺐다. 콧구멍으로 공기라는 게 들어왔다. 무려 양쪽 코로.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수술도 무용지물이었다. 꽃가루 철이 되자 다시 콧물은 주룩주룩 흘렀나 왔다. 알레르기 완치는 현대 의학으로 불가능한 것이구나, 확신했다. 하지만 바로 다이어트가 해냈다. 몸무게가 78kg에서 70kg로 내려가자 알레르기가 사라졌다. 조금이 아니라 완전히. 배가 고파 힘들었지만 숨 쉴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두 번째 변화는 여드름이었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여드름을 달고 살았다.  이번에도 양의학과 한의학을 모두 찾았다. 한약을 지어먹고 레이저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았다. 십여 년 고생 끝에 포기했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하자 여드름이 사라졌다. 얼굴이 도자기처럼 매끈거렸다. 일부러 하루 동안 얼굴을 씻지 않아도 봤다. 그래도 여드름은 기어코 나지 않았다. 


문제가 하나 생겼다. 성욕이 사라진 것이다. 티끌만큼도 욕구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참사였다. 아, 삼십 년간 성욕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내시가 된 기분이랄까. 처음엔 장난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지속되자 불안했다. 나이가 들며 남성 호르몬이 급감해 정말 고자가 된 건가 걱정됐다. 유튜브에 '다이어트 성욕'을 검색했다. 다행히 한 헬스 유튜버가 바디 프로필 경험담을 설명하며 "다이어트를 하니 성욕도 줄어드는 현상을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그제야 온몸의 긴장을 풀렸다. 의자에 몸을 뒤로 축 기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세 가지 현상들은 아마 에너지가 기초 대사량 아래로 떨어져 발생한 사태로 추측된다. 생존에 필요한 필수 요소를 제외한 부차적 활동을 멈춰버린 게 아닐까. 다이어트에 들어가면 뇌는 비상 상황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호흡과 혈액 순환같이 필수 활동에 에너지를 먼저 투입시킬 것이다. 알레르기, 여드름, 성욕 같은데 에너지 쓸 겨를이 없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이런 의문도 들었다. 성욕은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게 아니란 말인 건가?  


바디 프로필 촬영이 끝난 날.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알레르기와 여드름이 사라진 대신 성욕이 없는 채 살겠는가, 알레르기와 여드름을 평생 달고 살며 성욕이 회복된 채 살겠는가. 잠깐 머릿속으로 두 가지 케이스를 상상해봤다. 뒤돌아보지 않고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여드름과 알레르기의 고통쯤이야 맛있는 음식 실컷 먹으며 남자로서 적절한 기능을 수행해 준다면 충분히 보상이 된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애슐리 레스토랑을 찾았다. 진열된 모든 음식을 온몸으로 때려 넣었다. 미친 듯이 개처럼 먹어대자 몸무게는 하루 만에 65kg에서 73kg로 변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얼굴에는 여드름이 올라왔다. 콧물이 흘러내렸다. 성욕도 몸무게처럼 정상 회복됐다. 다행이었다.


애슐리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김종국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