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저녁 자리였다. 바디 프로필 촬영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평소보다 미친 듯이 헬스를 하던 시기. 여자 지인은 내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디 써먹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해? 헬스만 맨날 해서 몸 좋아지면 여자들이 더 꼬이기라도 하는 거야?"
"음, 사실 헬스하고부터 남자만 꼬여요."
나의 대답이 어이가 없었는지 그녀는 빵 터져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뭐야, 헬스도 별 쓸모가 없네."
그녀는 혼잣말처럼 내뱉고는 소주잔을 홀로 들이부었다.
맞다. 맨 처음 내가 헬스를 시작할 때 그녀말따나 그런 모습을 상상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몸이 좋아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멋지게 보일 것 같고, 특히 이성에겐 더욱 그렇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니까. 첫 시작은 그랬다.
그런데 꾸준히 한지 2년이 지난 결과는? 결론적으로 남자만 꼬인다. 먼저 술자리나 사적 모임이 확연히 줄어든다. 누구보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에 없는 형식적인 모임은 웬만해선 안 나간다. 대신 홀로 헬스장으로 향할 때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더 행복하다.
설사 모임에 가더라도 다이어트 땐 술은 자제하는 편이다. 한 여성은 "너 보니 헬스하는 사람과는 절대 연애하지 않겠어. 김종국이 지금까지 결혼을 못(안) 한 이유를 알겠네"라고 한 적도 잇다.
웃으며 헬스하는 김종국
헬스장에 가면 또 어떤가. 내 시선은 본능적으로 남성들에게 쏠린다. '저 사람은 상체보다 하체가 좋네, 중량을 엄청 많이 치네, 운동수행능력 미쳤다'라고 눈을 흘긴다.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성과 같이 운동할 수 있지 않냐고? 운동 파트너는 늘 남성이다. 여성과 함께 같이 운동하기엔 관심 있는 운동 부위가 다르거니와 수행능력이나 무게가 확연히 달라 쉽지가 않다. 남성 친구들과술집 대신 헬스장에서 서로 보조를 맞춰주며 땀 흘리고 닭가슴살을 뜯어먹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헬스하는 남정네들끼리 헬스장은 '쇠질만 해야 하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고요한 산사나 신성한 성당처럼 순수한 땀만이 허용되는 곳. 이런 공간에서 눈치 없이 애정행각을 벌이다간 주위 수많은 남성들의 보이지 않는 질타를 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신성한 룰을 깬 경찰 형님이 있다. 같은 헬스장을 다니는 그는 경찰 중에도 0.1%에 속하는 몸짱이다. 늘 내게 "신성한 헬스장에서는 오로지 운동만 하는 겁니다"라고 일장연설을 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하루는 새로 생긴 여자 친구를 데리고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거 구속감인데요"라고 하자 경찰 형님은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하"라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몇 달 뒤부터 여자 친구가 헬스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별을 맞은 경찰 형님은 "잠시 그때 제가 미쳤었네요. 신성한 헬스장에서...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라며 용서를 빌었다. 나는 풍기문란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한 그의 형을 참작해 집행유예로 마무리짓기로 했다.
전주여행에서 친구와 헬스장
이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 헬스하는 남자들만 득실득실한 게 이상치 않아 보인다.여행을 가서 같이 좋은 헬스장을 찾아가고, 맛집 말고 닭집을 가며 진한 브로맨스를 나눈다. 더구나 다시는 찍지 않기로 한 바디 프로필을 올여름 단체로 찍기로 약속까지 해버렸으니. 헬스의 목적이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져버린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오늘도 내일도 헬스장을 찾는다. 원래 세상만사가 처음 의도대로 이뤄지는 게 얼마나 있겠는가.그렇다고 헬스가 절대 무용하다는 말은 아니다. 헬스 덕분에 그동안 관심 가지지 못했던 나를 좀 더 잘 알게 된 건 분명한 듯하다. 헬스는 명상처럼 온전히 나에 집중할 수 있는 하루의 유일한 시간. 더욱이 헬스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삶의 모든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던 내가 작은 습관을 하나씩 쌓아가며 해내는 법을 배웠다. 안주하려던 내가 도전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짜릿한지알려준다. 작은 성공들은살아가는데 큰 원동력이 된다. 삶을 바꿔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래도 남자만 꼬이는 이 운동을 그만둘 수가 없다.단혹여나 헬스로 몸짱이 되면 여자가 꼬일까 생각에 첫 헬스장 등록을 고민하는 남성에게는 꼭 이말을 해주고 싶다.
경고문: <이유야 어찌 됐든 헬스에 한 번 발들였다간 영영 남자만 꼬일 수 있으니 헬스장에 등록하기 전 장고의 시간을 꼭 가져보시길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