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날

잠도 오고 심심하고 배도 고프고

by 조르바




황성초 2학년 5반 4번 일기장
1999년 7월 23일 목요일 날씨 맑음.
일어난 시각: 오전 7시 00분 / 잠자는 시각: 오후 9시 00분

제목: 기다린 날

오늘 놀다 와 보니 어머니께서 안 계셨다.
복도에서 기다렸다.
잠도 오고 심심하고 배도 고프고 해 더 이상은 못 참아서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가려고 하니 어머니께서 떡을 들고 오셨다.
집에서 맛있는 떡을 먹어 배고픔이 도망갔다.
"맛있는 떡을 사주셔서 고맙습니다."


아홉 살이던 나는 우리 집 아파트 1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엄마를 기다렸다. 1층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11층에 "땡!" 하고 멈춰 서길 바랬다. 엘리베이터가 10층에서 멈춰버릴 땐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12층으로 올라가버리면 괜한 투정을 부렸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11층에 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가 있었다. "땡!" 옆집 아줌마가 내렸다. 멋쩍은 인사를 건넸다. 찬밥이 돼 엄마를 기다렸다.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었다. 교육 목적이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시간을 때울 것들도 마땅치 않았다.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줄 첨단 기술들이 없던 시절. 해가 시드는 하루를 느껴가며 마냥 기다렸다. 그래서 잠도 오고, 심심하기도 하고, 배도 고팠던가 보다. 어린 나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참 길게만 느껴졌다.


11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엄마가 검은 봉다리에 한가득 떡을 들고 오셨다.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엄마!" 기다림의 간절함을 담아 신나게 외쳤다. 고된 배달 일을 마친 엄마도 맛있는 떡을 사들고 오신 걸 보니 기다리고 있을 날 생각했나 보다. 번쩍 안아주며 떡을 건네주셨다.


그시절 나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온전히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늦게 오는 엄마가 걱정됐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엄마와의 만남은 더욱 간절했다. 배춧잎 같은 엄마의 타박타박 발소리에 귀 기울인 어릴적 시인 기형도의 마음처럼 내 마음은 오롯이 엄마의 발소리를 향해 있었다.


서른한 살. 나는 기다리지만 기다림은 없다.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때운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유튜브 알고리즘 덕에 기다리는 시간은 홀라당 사라진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은 쉴 새 없이 울린다. 내일 할 업무 계획을 짜기 바쁘다. 기다림의 빈틈은 보이지 않는다. 빈틈은 다른 무언가로 빽빽하게 채워진다. 기다림에 간절함은 사라졌다.


나는 오늘 기다린다.

기다리는 하루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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