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발 씻어 드리기

아버지의 발에는 따뜻함이 넘치고 있는 것 같았다.

by 조르바




황성초등학교 3학년 6반 일기장.
2000년 5월 9일 일요일. 날씨 맑음.

제목: 아버지 발 씻어 드리기.

아버지의 발을 씻어 드렸다.
발 사이에도 씻어 드리고 깨끗이 씻어 드렸다.
씻다 보니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고
이 발로 걸어 다니며 일하시니 발에는 따뜻함이 넘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에도 아버지의 발을 씻어 드려서 또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겠다.




아빠의 발을 이렇게 깊게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던가. 내 기억이 맞다면 20년 전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아빠의 발을 보고 '따뜻함이 넘치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한다. '두 발로 나와 가족들을 먹여 살리시려 걸어 다니고 일하시는구나'라며 아빠의 발을 보고 만진다. 어렴풋했지만 아빠의 발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아버지는 삼십여 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 게 아직도 신기하고 어색하다고 하신다. 퇴직하시기 한 달 전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아빠는 "퇴임식에 아버지 꼭 모시고 싶었는데 미리 오시라고 말씀이라도 못 드린 게 너무나도 한스럽습니다"라며 엉엉 우셨다.


어릴적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빠의 검은색 소나타2 조수석에 타고 학교로 등교하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대형 트럭 한 대가 아빠 차량을 보지 못하고 갑자기 튀어나왔다. 아빠가 클락션을 크게 울렸고 그제야 트럭은 브레이크를 밟았다. 조수석 문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트럭은 멈춰 섰다. 아빠는 차가 서자 마자 곧바로 차량 밖으로 뛰쳐나갔다. 젊은 트럭 운전수가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아빠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운전수의 멱살을 잡고 흔드셨다. "차에 부딪혔으면 어떡하려고 했냐"며 노발대발 화를 내셨다. "미안하다"고 하는 운전수의 말에도 아빠의 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운전수를 계속해서 밀치셨다.


어렸던 나는 잔뜩 겁에 질렸다. 트럭 기사가 잘못했지만 사고가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화를 내는 아빠가 무서웠다. 아빠의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빠가 차에 다시 탑승하자 "아빠, 왜 욕하면서까지 화를 냈어요"라고 물었다. "니 쪽으로 차가 와서 박을 뻔했는데 어예 참노."아빠의 대답이 끝나자 침묵이 이어졌다. 20여분이 지나 차량은 어느덧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가방을 들고 내리려고 할 때, 아빠는 참아왔던 한 마디 말을 넌지시 건넸다. "놀라게 해서 미안타." 당시 아빠의 양가적인 감정을 서른 살이 된 나는 이해한다.


아빠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가 있었다(절대 내가 담배를 핀 건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집 뒤에 있던 'N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며 타박타박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덩치가 큰 한 남성이 뒤에서 나타나 나의 손목을 잡고 끌고 갔다. 아빠였다. 아빠의 귀에 나의 검은 행적이 들어갔던 것이다. 우리집 아파트 안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문이 쿵 닫혔다. 몽둥이 하나가 보였다. 그 후 기억은 사라졌다. 모조리. 이 사건을 겪은 뒤 아빠는 평생 피우시던 담배를 끊으셨다. 나 역시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지금껏 담배를 입에 대본 적이 없다. 군대에서도 말이다(아빠에게 감사드리기엔 너무 많이 맞았다).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매일 같이 쌓여오던 아빠와의 추억은 고등학생이 된 뒤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었다. 아침 8시까지 등교해 새벽 12시 반에 자습을 마쳤으니 물리적으로 집에서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수험생이라는 이름 하에 함께 여행을 갈 일은 더더욱 없었다. 수험생활을 마친 뒤에는 홀로 서울에 올라왔다. 기껏해야 고향 경주에 내려가는 횟수는 1년에 네댓 번이 전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아빠와 함께할 시간은 더욱 줄었다. 매달 함께 동네 용황탕에 가 등을 밀어주던 사이에서 아빠의 카라처럼 뻣뻣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아빠의 발을 볼 기회도 함께 사라졌다. 발은 남에게 보여주기 가장 부끄럽고 은밀한 부위라고들 하는데 그래서 일까. 아빠와의 대화도 그랬다. 아빠의 발을 마주하기 민망해진 것처럼 아빠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성인이 됐지만 단 둘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부자지간 진한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 "밥 뭇나." "네." 경상도 두 남자의 대화는 단문과 단답으로 끝났다. 침묵은 어색했고 민망했다. 그래서인지 경주에 가면 늘 아빠보다 친구를 먼저 찾곤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 나이 서른한 살. 지금의 내 나이였다. 서른의 나이를 감당하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서른한 살에 나를 낳고 또 서른한 살을 버텨오신 우리 아빠다. 나를 위해 당신을 내팽겨치고 두발로 뛰어다니셨다. 힘차게 땅을 내딛던 젊은 시절 아빠의 발걸음이 어느샌가 지쳐 움츠려져 있을 것 같다. 훌쩍 지나가 버린 세월만큼 따뜻했던 아빠의 발이 차갑게 굳어버렸을 것 같다.


아빠의 발에 담긴 따뜻함을 마주하고 싶다. 아빠의 발에 켜켜이 묵혀 있던 아픔과 고난들을 내 손으로 깨끗이 씻겨드리고 싶다. 아빠의 발에서 피어올랐던 따뜻함이 다시 넘쳐 흐르도록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혼자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아빠 제가 발 씻겨드릴게요." "갑자기 와 이라노. 됐다 마." 아빠는 분명 그럴 거다. 그러면서도 슬며시 아들에게 두 발을 내밀어 주실 거다. 아무 말 없이. 어쩌면 아빠도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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