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황초 5학년 3반 4번 일기장
2001년 7월 16일
제목: 쓸 것이 없는 일기
쓸 일기가 없어서 엄마께서 위와 같은 주제를 내어 주셨다.
난 정말 쓸 일이 없다.
저녁 되기 전에 쓸 내용을 낮에 만들어 놓아 저녁에 쓸 내용이 있게 해야겠다.
또 일기를 내일부터 더욱더 정성껏 쓰고 해야겠다.
하루라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야겠다.
일기가 써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땐 "일기를 쓸게 없다"라고 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이지 쓸 게 없었는 걸. 쓸 것이 없었던 그날 하루도 돌아 보면 소중한 하루였다. '쓸 내용이 없다'던 일기장 한 페이지는 20년이 지나 소중한 추억이 됐으니까. 써지지 않으면 쓰지 않았다. 애쓰지 않는 것. 그게 초등학생 시절 나였다.
중학교에 올라간 뒤 박명일 입시학원을 다녔다. 사회 선생님이 <데미안> 독후감 숙제를 내준 적이 있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누굴 만나서 뭘 하고 뭘 했다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판타지 소설 같기도 하고 정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뭘 짜내서라도 A4 용지 한 장을 채워야 하는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느끼는 대로 쓰자. 연필로 A4용지 중앙에 큼지막하게 '?' 하나를 적었다. 내가 제출한 독후감의 전부였다. 중학생인 내게 데미안은 정말 물음표였으니까.
사회 선생님께 혼날 각오도 했다. 참 성의 없어 보이긴 했다. 꾸지람을 들을 줄 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제출했다. 독후감을 본 선생님은 나를 다그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칭찬했다. 진지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데미안을 읽고 이해가 안 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독후감 숙제를 내준 거다. 다만 네가 10년 뒤 어른이 되고 꼭 다시 데미안을 읽어봐. 그땐 데미안이 분명 너에게 다르게 다가올 거야." 난 내가 어른이 되면 데미안을 꼭 다시 읽어보겠다고 선생님과 약속했다. 데미안을 이해한다는 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음표가 느낌표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꿈꿨다.
10년이 지나 대학에 들어갔다. <데미안>을 다시 만났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나는 물음표에서 느낌표를 향해 조금씩 움직였고 움직인 만큼 성장했다. 그렇게 <데미안>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이 됐다. 어렸을 적 데미안이 물음표였던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느낌표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기에 지금 데미안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써지지 않을 땐 쓰지 않았고, 이해가 안 될 땐 이해하지 않았다. 애쓰지 않는 삶. 그게 어릴 적 내가 살아간 방식이었다.
살다 보니 달라졌다. 쓸 내용은 없는데 일기를 채워야만 하는 상황이랄까.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되는 척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웃을 일이 아닌데 웃어야 했고,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답을 찾아야 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여야 하는 삶이 이어졌다. "원래 어른의 삶은 그런 법이야." 나는 그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나'라는 A4 용지에는 온갖 미사여구와 수식어가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나는 담겨있지 않았다.
1년 넘게 취업에 실패했을 때가 그랬다. 합격에 목말라 '자소설'을 써댔다. 채워지지 않은 나의 모습을 드러내기 부끄러웠다. 나를 있는 그대로 적지 않았다. 나를 잘 몰랐기에 글은 써지지 않았다. 그저 미사여구가 가득한 글을 썼고 면접을 봤다. 결과는 늘 탈락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그랬다. 잘 보이려고만 애썼다. 내가 아닌 모습을 뽐내려 했고, 결국 마무리는 이별이었다. 있어 보이려는 할 때마다 인간 관계도 꼬여버렸다. 사실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억지로 무언가 꼭 채워 넣기보다 써지지 않는 삶을 한번 받아들여보고 싶다. 웃고 싶지 않을 땐 웃지 않고, 모르면 모른다고, 쓸 것이 없으면 쓰지 않는 것 말이다. '될 대로 되라지. 써지지 않는 삶을 한 번 즐겨보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삶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마음껏 기뻐할 것만 같다. 어쩌면 그때가 바로 진짜 나의 삶으로 채워지는 순간일 것이며, 나의 삶이 다시 쓰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