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때문에 길도 좁고 어지럽다고 다 부섰다
어떤 사람은 울기도 하였다
황성초 2학년 6반 4번
1998년 10월 22일 금요일 날씨 맑음.
제목: 포장마차
지하도 옆에 있는 포장마차들 때문에
길도 좁고 어지럽다고 다 부쉈다.
어떤 사람은 울기도 하였다.
살림을 차려야 하는데 일을 못하니 불쌍해 보였다.
추운 겨울 속독 학원을 마치면 지하도 옆에 있는 잉어빵을 파는 포장마차를 늘상 찾았다. 일흔이 훌쩍 넘어 보이시는 노부부가 함께 일했다. 할아버지는 잉어빵을 만들고 할머니는 계산을 담당했다. 잉어빵은 한 마리에 250원, 뜨끈한 오뎅 국물은 서비스. 배부름을 모르던 소년은 고래라도 된 마냥 잉어빵을 입안 가득 흡입했다. 노부부의 따뜻한 인심이 그리웠을까, 잉어빵이 좀 더 날씬해서 먹기가 편해서 였을까. 이때부터 나는 붕어빵보다 잉어빵이 더 좋아했다. 서울에 올라간 뒤 붕어빵이 아닌 잉어빵을 파는 포장마차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럴 때면 꼭 포장마차에 들러 그때 그 추억을 먹곤 했다.
잉어빵 포장마자 반대쪽에는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떡볶이집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랑 참 많이 닮아 기억이 생생히 난다. 떡볶이는 1인분에 2000원이었다. 내가 먹던 경주의 떡볶이는 서울의 떡볶이와는 꽤나 달랐다. 서울보다 크지 않고 길쭉한 떡을 사용했다. 또 오뎅이 훨씬 많이 들어 있다. 나는 떡보다 오뎅을 좋아하는 편이라 주문할 때면 "오뎅 많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면 떡볶이 할머니는 오뎅과 떡 둘 다 많이 퍼줬다. 든든한 한 끼였다. 반면 서울의 떡볶이 집은 떡과 오뎅 가운데 떡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이름 그대로 '떡볶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지하도 옆 떡볶이 할머니의 떡보다 훨씬 더 큰 떡을 써서 고추장이 덜 스며들어 밍밍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 먹던 맛이 느껴지지 않아 서울에서는 떡볶이를 즐겨 찾지 않게 된다.
수능에서 떨어진 뒤 재수를 결정했다. 재수학원을 알아보러 서울로 올라갔다.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내렸다. 이미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한 친구가 술을 사겠다고 했다. 동서울터미널 맞은편 포장마차에 데려갔다. 내게 위로의 소주 한 잔을 건넸다. 안주는 순대였다. 순대를 시켰는데 소금장이 나왔다. 쌈장이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 쌈장 소스 안 나왔어요." 아줌마가 껄껄 웃었다. "손님 경상도에서 왔지?" "네..." 난 19년 만에 경상도에서만 순대에 쌈장을 찍어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참 놀라웠던 서울의 첫인상이었다. 그당시 나는 "쌈장 없는 순대는 순대가 아니야" 고집을 부렸다. 안주 없이 소주만 그렇게 마셔댔다. 서울에 산지 10년. 아직도 난 소금장만 고집하는 서울의 순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경주나 서울에서나 길거리 포장마차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깨끗한 거리라는 명분 하에 하나둘 부서지고 밀려졌다. 포장마차가 하나둘 부서질 때마다 나의 추억도 함께 사라져 버린 기분이 든다. 잉어빵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는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우리 할머니를 똑 닮은 떡볶이집 할머니는 오뎅이 푸짐한 떡볶이를 여전히 팔고 계실까. 고향에 가더라도 다시는 그때 그 맛을 볼 수 없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얼마 전 경주에 내려가 지하도 길을 지나갔다. 잉어빵 포장마차가 있던 자리에는 '하루 60마리만 튀긴다'는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들어서 있었다. 깨끗한 기름을 써서 맛난 닭을 튀긴다는데, 그 시절 내가 먹던 잉어빵과 떡볶이 맛에는 결코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