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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Feb 27. 2020

[인터뷰] 서용마_꾸준함 기록 행복


서용마 님을 처음 만난 건 1년 전이었습니다. 이전부터 그의 브런치에서 다양한 글을 접해왔습니다. 그는 자기 계발과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어쩐지 나와 닮아있었습니다. 나는 언젠가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차 한 잔 하실까요?" 


우리는 책과 기록과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내게 기록법과 도구를 소개해줬는데, 그것은 내가 지금껏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꾸준한 사람이었고 단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자기 확신이 강했으며, 그 힘은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려는 의지와 기록에서 나오는 듯했습니다.


그를 첫 인터뷰이로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혼자서만 간직하기에는 아까운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왕십리의 어느 카페에서 만났고, 조금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퇴사. 취미가 일이 된 사람


안녕하세요, 용마 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예전에 3년 정도 임베디드 개발자로 일했고, 1년 3개월 정도 갭이어(Gap year)* 기간을 가졌어요. 지금은 커스텀 다이어리 회사 ‘플랜커스’에서 전략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취미가 직업이 된 사람이에요.


취미가 직업이 되셨다고요?

사회 초년생 때, ‘바스락’이라는 바인더 기록 모임을 만들었어요. 리더로서 모임을 이끌다보니까 아무래도 회사보다 더 정성을 쏟게 되더라고요. 바인더 기록과 독서, 자기계발에 대한 모임을 매주 갖다보니까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아, 내가 이쪽 길로 가봐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지금의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죠.


퇴사한 뒤 불안하지는 않으셨나요? 어떤 마음으로 지내셨어요?

더 일찍 퇴사하지 못한 이유가 불안해서였어요. 그런데 막상 퇴사하고 나니까, 생각보다 불안하지 않았어요. 제가 퇴사하고 뭘 했냐면요. 여행하고, 책 읽고, 영화 보고, 매일 글을 썼어요. 그렇게 한 이유도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일들이 저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어요. 여행과 영화가 글이 되고, 제가 올린 글에 반응이 생기고, 좋은 기회들이 생겼어요.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제가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맞는 일이었어요. 그때 열심히 쌓았던 것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는 것같아요.


* 갭이어(Gap Year) : 학업이나 일을 잠시 중단하고, 여행, 자기 계발, 창업, 진로 탐색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기간.  



잘하는 사람보다 꾸준한 사람이 멋지다


꾸준함을 통해 성장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어떻게 하면 꾸준하게 할 수 있을까요? 

꾸준하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워요. 저는 지금도 어려워요. 


용마 님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꾸준한 사람이에요.

사실 타고난 것도 있어요. 저는 반복되는 루틴을 잘 견디는 편이에요. 물론 하나를 오래하면 지루하죠. 그래서 저는 세 가지 일을 돌아가면서 해요. 예를 들면,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는 시기가 있고, 책을 집중적으로 읽는 시기가 있고, 여행을 집중적으로 가는 시기가 있어요. 조금 지루해질 시기가 오면 다음 것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자신만의 주기가 있는 것같아요. 저는 일단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경향이 있어요.


언젠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잘하는 사람보다 꾸준히 하는 사람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보통은 잘하는 사람을 더 멋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우리는 잘하는 사람을 보면, 감탄은 하지만 자신과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우리가 천재를 좋아하는 이유는 천재를 만드는 순간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에요. 그들을 타고났다고 규정하고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러면 납득이 돼요. 마음이 편해지죠.


조금 찔리는데요.

반면에 꾸준한 사람을 보면 '나도 저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는 자극을 받게 돼요. 꾸준하다는 건 결국 ‘자신과의 경쟁’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멋지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왜 기록을 해야할까


용마 님은 기록을 하는 사람이에요. <모든 기록은 워크플로위에서 시작된다>라는 책을 내기도 하셨고, 바인더 다이어리를 쓰는 모임을 운영하시고, 결국 다이어리 회사에 합류하셨어요. 우리는 왜 기록을 해야 할까요?

저는 기록을 꼭 해야한다고 무작정 추천하지 않아요. 각자의 성향이 다르고, 기록을 일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실 기록을 안해도 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인생에 한번씩 허무해지는 순간이 찾아와요. 내가 지금까지 뭘했지? 지금껏 바쁘게 살았는데 뭘 했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이런 순간이 평소에는 안오다가, 자신이 흔들릴 때마다 찾아오거든요. 그런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바닥까지 내려가요. 회복하기가 힘들고, 또 금방 찾아와요.


기록을 하면 그런 시기가 오지 않나요? 

제가 기록을 하는 이유는 그런 시기를 빠르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언제 무엇을 했는지를 ‘생각하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거든요. 그걸 기록하다보면 눈에 보이고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돼요. 제 특징 중에 하나가 ‘번아웃(Burn-out)’** 증상이 없다는 점이에요. 기록을 하면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매일 확인을 하다보니까 번아웃이 생기지 않는 것같아요. 평소에 기록하지 않으면, 이미 도착하고나서 뒤를 돌아보면 잘못된 길을 와있는 거예요. 그러면 막막한 거죠.


얼마나 오랫동안 기록하셨나요?

바인더 다이어리에 기록한지는 9년 정도. 디지털로는 3, 4년 정도 된 것같아요.


주로 어떤 것들을 기록하시나요? 본인만의 방식이 있나요?

저는 타임 테이블에 모든 시간을 기록해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요. 이걸 들여다보면서 ‘내가 이때 흔들렸구나’라는 걸 캐치하는거죠. 바인더에 기록을 하면 좋은 점이 자신의 일상을 패턴화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잘 흔들리지 않아요. 하지만 일상이 패턴화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시간을 기록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요. 매번 일어나는 시간도 다르고, 계획에 없던 저녁 약속, 술 자리 때문에 일정하지 않은거죠. 


** 번아웃(Burnout) :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



나를 중심에 놓는 삶


‘욜로(YOLO)’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빡빡하게 계획하며 살지 않고,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고 싶어해요. 방금 말한 '일상의 패턴화'는 그것과 반대되는 이야기처럼 들려요.

저는 ‘욜로’의 삶도 존중해요. 문제는 후회를 한다는 거예요.  만약 ‘욜로’의 끝이 후회가 아니라면 그 삶을 지지해요. 제가 일상을 패턴화해야한다고 말한 것은 결국 '나'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나를 뺏기지 않는거죠. 사실 ‘욜로’도 한번뿐인 인생, 다른 것에 나를 뺏기고 싶지 않은 거잖아요. 내가 내 인생의 중심에 서있겠다는 점에서 보면 본질은 같은 거예요. 다만 낭비하고 소비하며 살 것인가, 축적하고 경험을 만들며 살 것인가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추구하지만, 실천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나심 탈레브가 책에서 이런 말을 해요. “자신이 설계한 게임에서는 지지 않는다.” 삶의 패턴이라는 건 내가 설계한 게임이에요. 만약 오늘 글을 쓰려고 했는데 직장 동료가 갑자기 술 자리를 제안한다면, 저는 아마 비교를 하게 될 거예요. 미리 계획된 일상의 패턴과 새롭게 제안된 일정 사이에서요. 동료와 술을 마시러 갈수도 있어요. 그게 나쁜 결정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 순간에 비교를 한다는 게 중요한 것같아요. 그런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계속해서 외부 환경에 끌려다니게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 거죠.


삶의 패턴이 없는 사람이라면, 외부의 개입에 고민없이 끌려가게 되는 거군요.

네, 맞아요. 만약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기록을 한다면, 그게 눈에 보이니까, 그런 일이 연속으로 발생하거나 자주 생길 때 그것이 문제였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죠.



행복에 대한 이론


최근에 ‘행복’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는 것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행복에 대한 정의가 있을까요.

저는 최인철 교수님이 쓰신 <굿라이프>를 좋아해요. 이 책에서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바꾸어 버려요. 원래 행복은 ‘굴러들어오는 복’, 나는 여기 있고 행복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데요. 최인철 교수님은 '행복이란 쾌족(快足)이다.' 즉, 행복이란 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이라고 말해요.


행복은 쾌족이다. 어떤 의미인가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이에요. 외부에서 굴러들어오거나 손님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행복은 철저히 일상적이라고 말해요. 행복이란 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널려있는 것이고, 내가 발견하기 나름이에요. 우리는 지금 잠깐 불행할 뿐인데, 삶 전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잖아요.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하나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고 기록해요. 예를 들어서, 저는 전자책으로 산 책을 종이책으로 사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CGV 오리, 8관의 F4자리를 좋아해요. (구체적이네요.) 그런 것들은 발견한 순간에 바로 기록으로 남겨야해요. 수집이 안되면, 그 순간이 다시 와야지만 기억할 수 있는거죠. 가끔 제가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일부러 제가 좋아하는 상황으로 저를 데려가요. 만약 자신이 좋아하는 걸 모른다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거나 그냥 누워있었겠죠. 보통 사람들은 혼자 시간을 보내면 괜찮아진다고 생각해요. 그건 해결책이 아니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한 얘기를 정리해주시면 좋을 것같아요. 꾸준함, 기록,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요. 이 세 가지의 연관성을 간단하게 말씀해주신다면요?

꾸준함, 기록, 행복. 저는 이 세 가지 모두 일상에 달라붙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것들은 꾸준해야 겨우 얻어낼 수 있는 거예요. 그만큼 쉽게 무너져요. 절대 만만하지 않아요. 이것들은 탄탄하게 쌓아야하는 것이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얻을 수 없어요. 그냥 지금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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