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Mar 11. 2020

나의 순간은 반딧불 무리처럼


지금도, 나는 수없이 흔들린다. 다들 어찌 저리도 단단하게 살아가는 것인지 나는 늘 궁금해했다. 혼자인 주말 저녁이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걸고 싶었다. 너도 혹시 나처럼 외롭냐고, 불안하냐고 묻고 싶었다. 나는 그렇다고. 멀미가 날 정도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어느 날은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현자(顯者)라도 되는 마냥 인생을 논했다. 다음 날 새벽엔 옛 동료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 아빠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젯밤에는 내가 기탄없이 던진 말에 동료가 흘린 눈물을 아프게 떠올렸다. 그 정도로 나는 어리나약한 인간인 것이다.


무던한 나도 열렬한 마음으로 끓어오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뜨거울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모두 증발해 버리거나 열을 유지하지 못하고 곧장 식어버렸다. 미지근한 마음이 되었을 때 나는 큰 좌절감을 느꼈다. 그 좌절감은 그나마 견뎌온 삶 전체를 조망하게 했다. 이토록 생경스런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얼추 대견스럽기도 하나, 온 힘을 다해 겨우 피워낸 것은 변변찮은 안개꽃뿐이었다. 그렇게 나를 평가한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반딧불 무리를 본 적이 있다. 보트를 타고 무섭도록 까만 숲 속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내게로 쏟아질듯한 별들이 있었다. 나의 머리 위로 유난히 많은 별들이 모여있었다. 반딧불이었다. 맹그로브 숲이 엄청난 양의 반딧불로 반짝이고 있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영상을 찍어봤지만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눈 보는 것만큼 담을 수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빛나는 생명체 무리를 바라보았다. 보트에서 내리자 선착장에 계신 할아버지가 내게 어땠냐고 물었다. 내 생애 처음 본 반딧불이었고,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리는 매일 크리스마스인 기분으로 산다며 그가 웃었다.


나의 순간은 달처럼 빛나지도, 붉은 장미꽃을 피우지도 못했다. 하지만 작은 순간도 모이면 아름답다. 희미한 빛도 어둠 속에서는 밝을 수 있다. 반딧불 무리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나고, 안개꽃이 모여 흰색 커튼을 대지에 드리우는 것처럼. 삶은 그렇게 빛난다. 나는 반딧불 무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제가 쓴 글과 브런치 글, 음악 추천을 메일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저의 메일레터를 구독해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이를테면, 사람이라든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