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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Dec 20. 2020

2020년 개인 회고 : 多事多難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투쟁했던 나날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회고(回顧)

 1. 돌아다보는 것
 2.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


뒤를 돌아본다는 건 마음 급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체스나 바둑 기사는 시합이 끝난 후 반드시 복기(復碁)를 합니다. '이때 이런 선택을 했더니 이런 국면이 되었구나. 만약 이 상황에서 이런 수를 두었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생각은 반드시 돌아보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2020년을 돌아보려 합니다. 요약하자, 올해는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경험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1월의 저와 12월의 저를 놓고 비교한다면 여러 방면에서 달라졌을 겁니다. 사람 자체는 그대로 일지 모르겠으나, 긴장감이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고 할까요. 비유하자면, 같은 음식이지만 그 온도나 감칠맛의 정도가 다르다는 기분입니다.



2020년을 백수로 시작했습니다. 인생에서 커다란 결정들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이직 실패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근래에 들어 가장 자존감이 낮았던 상태였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저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거나 뉴스레터를 통해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지 않았다면, 자책의 동굴 속에서 오랜 시간 빠져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매일 술을 마시며 저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코로나 19가 유행하면서, 구직 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긴 잉여 시간과 에너지를 뉴스레터에 쏟기로 했습니다. 사실 그것밖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작년부터 뉴스레터를 통해 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어왔으나 언젠가부터 스스로 벽을 쌓고 가두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면의 성숙과 확장은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이며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 사람과 함께 무엇이라도 해보면 좋겠다는 느낌이 스쳤던 몇몇 분들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기꺼운 마음으로 응해주셨습니다.


올해는 70건의 뉴스레터를 보내고, 4명의 패널들과 18개의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그렇게 만난 4명의 패널과 매달 책, 영화, 브랜드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뉴스레터로 보냈습니다. 지금도 감사한 점은, 훌륭한 사고와 취향을 가진 네 분을 통해 제 능력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제가 발견하지 못한 책의 이면을 보여주시는 김버금 작가님과 김승원 님, 영화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주시는 김의환 님, 브랜드와 트렌드의 특별한 디테일을 짚어주시는 선정수 님까지. 모두가 적극적인 관심과 의견 개진을 해주신 덕분에 뉴스레터는 한층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구독자들로부터 수백 개의 만족도 높은 피드백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성취가 없었다면, 저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팟캐스트도 시작하지 못했을 겁니다.


또 의미 있던 지점은 인터뷰 콘텐츠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한다는 컨셉이었으나, 각자가 가진 고유의 독특함과 성실성에 놀랐습니다. 손으로 기록하는 서용마 님, 독립출판 잡지를 만드는 딴짓 시스터즈, 프로바둑기사 조혜연 9단, 대기업을 나와 일의 의미를 찾아 나선 이수영 님, 비건의 놀라움에 대해 알려주신 한은현 님, 독립서점 여행마을을 운영하는 정지혜 님, 오랜 팬으로서 만나 뵙고 싶었던 크리에이터 서재영 님까지. 아마 인터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이야기들은 저에게 삶의 다양한 면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난 1년간 다양한 분들이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동기는 영향력과 존재감, 유능함을 얻고 싶다는 소망이었습니다. 재작년부터 브런치에 글을 썼고, 작년부터 뉴스레터를 발행했으며, 올해는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그 결실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연이나 커뮤니티, 콘텐츠 제휴 제안을 받는다든지, 몇몇 구독자 분들을 만나 서로 좋은 조언을 나눈다든지, 혹은 생소한 이름이었던 'xyzorba'에 대한 언급이 웹상에서 조금씩 발견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SNS와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에서 이런 순간은 생경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아, 그래도 무언가 되어가고 있구나'라는 의미로서 하나하나 소중하게 감각하게 됩니다. 직장일과 병행하는 탓에 좋은 제안들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쪼록 이런 기회들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직장에 대해 말하자면, 올해 중순에 좋은 기회로 현재 스타트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라는 다소 낯선 역할을 맡았지만, 제가 가진 역량과 경험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사이드 프로젝트와 또 다른 즐거움과 성취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IPO부터 PR/IR, B2B 마케팅, 인터널 브랜딩 등 다양한 과제를 진행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를 조금씩 높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2020년에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을 정리해봅니다. 잘한 점은 마음에 두고, 아쉬운 점은 내년 계획에 반영하고자 합니다.


잘한 점

글을 꾸준히 썼습니다. 40개 이상의 브런치 글과 70개 이상의 뉴스레터를 보냈습니다.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팟캐스트, 원데이 클래스 등을 처음으로 시도해봤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했고, 반대로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4명의 패널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볼 수 없었던 면을 보여주었고, 그건 꽤 든든한 기분입니다.

적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함이란 게으르고 겁이 많은 제게 매우 큰 의미입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제게 주어진 시간을 꼭꼭 채워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어떻게든 배우고 해냈습니다. 세상엔 제가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쉬운 점

너무 많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절반 이상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여유 없이 살았습니다. '일 좀 줄여. 인생 너무 피곤하게 살지 마.'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어보았습니다.

가족, 친구, 지인에게 자주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퇴근 후, 주말에도 일했고 주변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건강 관리를 못했습니다. 요즘은 잠을 자도 몸이 피로하고, 운동 부족으로 살도 쪘습니다.

여전히 저 자신에게 관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올해를 보내고 저는 제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졌을까요. 최선을 다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고, 재밌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고민됩니다. 지난 일 년 사이에 소중한 것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고, 그로 인해 몸은 힘들었으나 후회하지 않을 만큼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바라는 것의 수준은 높은데 역량이 부족하여 좌절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 날들이 양분이 되어 올해를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성과는 아니지만, 제 인생에서 의미있는 1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씩 해내고 있습니다. 이번 회고록으로 조금이나마 감사한 마음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투쟁했던 나날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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