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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r 21. 2024

운전의 즐거움

운전을 할 때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1.

기어코 운전대를 잡고 말았다. 나는 지난 15년간 장롱면허였다. 운전면허는 땄지만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 서울살이를 하면서 운전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지하철과 버스가 있으니 굳이 큰돈을 들이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평생 동안 운전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체험한 순간, 나는 즉시 운전 능력 소생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2.

나의 운전 경력을 간단하게 소개해보겠다. 나는 수능 시험을 치르자마자 운전면허를 땄다. 그때가 19살이었다. 운전면허가 당시 내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어른이 된 나는 호기롭게 아버지의 검은색 K5를 몰고 도로에 나섰다. 그리고 그날 사고를 냈다. 좁은 골목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피해 가다가 오른쪽 벽에 범퍼를 긁은 것이다. 끼이익- 하는 거칠고 섬뜩한 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초보 운전자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운전대를 잡지 않았고, 15년간 장롱면허자로 살아갔다. 운전면허는 신분증이 하나 더 생겼다는 효익만을 남겼다.


3.

아무튼 15년 만에 운전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그래서 일주일간 운전연수를 받게 되었다. 자동차에 있는 여러 버튼들을 하나씩 익혀가고, 엑셀과 브레이크의 감도에 적응하고, 도로의 언어를 익히고, 후면 주차를 연습하면서 호흡을 맞춰갔다. 처음엔 목과 허리가 아플 정도로 크게 긴장했지만, 결국 교통 규칙과 에티켓만 지킨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15년간 세상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경험해 본 탓일까. 주행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운전이 익숙해졌고, 전국 어디든 망설임 없이 다녀올만한 용기가 생겼다.


4.

운전을 하다 보면 위험한 순간들을 만난다. 한 번은 내 앞으로 무리하게 끼어든 차가 있었다. 나는 조금 놀랐고 '저런 방식으로 운전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얼굴이라도 꼭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였다. 그때 앞 차의 비상등이 두 번 깜빡였다.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순간 화가 눈 녹듯이 가라앉았다. 사르르르-. 그리고는 '아이고, 뭔가 급한 사정이 있었나 보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비상등 버튼을 누르는 그 작은 행동 하나에 사람의 감정을 이토록 바뀌다니. 나 스스로도 놀랐다. 그리고 곧이어, 감사함이나 미안함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나의 건조함을 반성하게 되었다. 요즘은 이런 사소한 배려들이 나의 감수성을 건드린다.


5.

'운전'과 '어른'은 자격을 얻기는 비교적 쉽지만 잘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운전할 때마다 되도록 여유를 가지고 양보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초보 운전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것이 내게는 일종의 정신적 성숙도 테스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줄 수 있겠어?'라고, 세상이 넌지시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런지 한번 양보를 할 때마다, 인내심의 총량이 마치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기분이 든다. 거친 클락션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조금 더 빨리 가겠다는 조급함도 내려놓고, 그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다독이면운전을 할 때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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