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 괜찮은 일은 안 괜찮다고 말하고 싶고,
요즘은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지난 일기를 살펴보니 '괜찮다'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보통 괜찮은 상황에 처한 사람은 괜찮다는 말을 안 쓴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요즘 주욱 괜찮지 않은 상황에 있었나 보다, 하고 나의 근황을 역으로 추정해 본다.
'괜찮다'를 일본어로 '다이죠-부'라고 한다. '대장부(大丈夫)'와 한자가 같다고 한다. 잡지식에 능한 아버지가 알려주셨다. 사실 아버지는 내가 '잡지식'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잡지식은 무엇이고, 그냥 지식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다이죠-부'와 '대장부'가 같은 한자를 쓴다든지, '검'은 양날이지만 '칼(도)'은 외날이라든지, 하는 그런 것들은 능히 잡지식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대장부' 즉 다 큰 어른이라는 건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인가 보다. 맹자는 대장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부와 명예도 그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고, 가난과 불명예도 그의 의지를 바꿀 수 없고, 권위와 무력으로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네. 이런 사람이라야 대장부라 할 수 있네." 대장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씩씩한 사람인가 보다.
그래 나도 대장부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다가도, 그 무엇도 나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고 의지를 바꿀 수 없고 굴복시킬 수 없다면, 그게 과연 즐거운 삶일까,라고도 생각해 본다.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평온하고 잔잔한 호수보다는 끝없이 파도가 치는 바다가 더 멋지지 않나,라는 거다. 어쩌면 고민 없는 삶도 그 나름대로 고민일 것 같다. 아니지, 고민 걱정 없는 깨끗하고 무결한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상상력이 없어서 일지도.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인생은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먼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다."라는 글귀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일본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이란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짐을 지고 있었나 궁금해져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를 찾아봤다. 상당히 싸움을 좋아하고 호전적이지만 말수가 적고 침착한 인물이라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쿨했나 보다.
한 번은 전투에서 바지에 똥을 쌀 정도로 치욕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처절하게 짓밟히고 바지에 똥을 싼 일을 부하들에게 시켜서 그 모습을 초상화로 남기고 심지어 석상까지 만들었다고 한다.(어이구) 그리고 그걸 매일같이 쳐다보면서 항상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했단다. 이 정도는 되어야
대장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자신의 치욕까지도 전시할 수 있는 사람. 그걸 바라보면서 회고하는 사람. 그 정도의 쿨함을 보일 수 있어야만 이를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해 본다. 나는 그 정도로 괜찮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웬만하면 일기에서 '괜찮다'는 말을 줄여보려고 한다. 나는 안 괜찮은 일은 안 괜찮다고 말하고 싶고 바지에 똥 싼 일은 되도록 남들에게 자랑하지 않는, 그런, 인간적인 사람이고 싶다, 라고 생각해본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