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나날

그곳에선 이곳을 이곳에선 그곳을 떠올리며

by 조세핀

답답함이 느껴질 때 즈음 지도를 눌러본다. (예전에야 지도를 펼친다라는 표현이 맞았겠지만...) 어디 갈 데 없나? 처음 보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눈에 담아야 숨이 쉬어질 것 같다. 틈날 때마다 생각해 본다. 생각은 이어지지만 결정까지는 몇 밤을 저 지새우고 몇 번의 눈살 찌푸려지는 일을 겪어야 한다. 이번에는 그 타이밍이 좀 늦은 감이 있다. 가고 싶을 때 떠나지 못하는 건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규칙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이상하게도 빠르게 움직여지는 몸, 가벼운 말투,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은 직장인으로 살던 지난 며칠 간의 나 자신이 보기에는 분명 낯설었을 나의 모습이었다. 몇 번 와 본 적 있는 곳이라서 맘 편히 걸어 다닐 수 있고,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그저 잠시 어제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나로 살아본다. 두근대는 마음보다는 잔잔하게, 요동치고 휘몰아치던 며칠 간의 일들을 가라앉힌다.

여전히 알림은 울려대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알림은 다르다.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길가의 모습들, 햇빛이 희한하게 자리 잡은 장소들, 누군가는 매일 봤을 광경들에 처음으로 눈을 맞추며 하루를 꿰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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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나날>을 보면서 왜 나는 그런 게 신경 쓰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저 작가는 한국 사람인데 일본에서 영화를 쓰고 있다는 거지?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을까? 어떤 작품을 썼을까? 그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걸까? 저 사람은 어쩌다가 지하철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집에 살게 됐을까? (그런 게스트하우스에서 잔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이틀도 고통스러웠다.) 그 교수님이 모은 카메라 중에 분명 비싼 것도 있었을 텐데, 주인공이 받은 카메라 기종이 궁금하다. (그리고 나도 새 필름카메라를 갑자기 구입하고 싶어 졌다.) 주인공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안 보여주는 건가? 눈이 저렇게 많이 오는 지역에서의 촬영은 얼마나 추웠을까? 손으로 쓰는 대본은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이제 AI가 아닌 손으로 직접 썼다고 작가가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친필 서적) 나는 그 여관 주인과 경찰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궁금증이 너무 많아서 영화는 그랬겠구나 이야기 식으로 흘러가다 몇 번의 브레이크를 잡고 끝나고도 그랬구나 하고 끝났다. 엄청난 설경이 기억에 남는다. 제목은 참 좋다. 아, 지난번 부국제에서 매진되어 보지 못했던 영화들을 알차게도 챙겨 보고 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어쩌면 가장 적당한 때에 본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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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고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가장 신경 쓰게 된 부분은 역시나 '말'이다. 상처 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일까, 단어나 소재 선택을 말하기 전에 꽤나 망설인다. 해주고 싶은 말을 참기도 하고, 이미 해 버린 말을 후회하기도 한다. 역시 말은 뱉어버리면 주워 담기 힘들다. 나만 해도 많은 말을 기억하는 편은 아니지만, 충격적인 몇몇 말들은 아직도 기억한다. 누군가의 기억에 그렇게 남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말을 더 신경 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여전히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들은 많아서 그들을 보면 의지는 쉽사리 꺾였다가 다시 일어났다가 한다.)





*이 글은 제미나이에게 윤문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일할 때는 그렇게 하는데, 내 생각을 담는 글에도 AI라는 칼을 대고 싶지는 않다. 조림왕이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할 때까지 조림 기법을 쓰지 않은 것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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