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하자
재작년과 작년, 브런치에 글을 한 글자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갈 즈음이니, 일이 바빠서였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2년 간 내게 있었던 일들을 뭐 딱히 기록하고 싶지도 않고 허투루 넘겨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기억에서 휘발되어 버리기를 굳이 기억하지 말기를 싶었던 2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즐거운 일도 있었겠고, 의아한 일도 있었겠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겠지만 지난 2년은 뭐 굳이... 다. 아니면 이제 기억할 수 있는 순간들을 채우는 용량이 어느 정도 찼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순간들은 내버려 두고 괜찮은 애들에게만 자리를 내어주고 싶어서인가? 그럼 2년 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는 길어봤자 닷새 분의 분량만 기억하면 될 것 같다. 어떤 웃음, 어떤 마음, 어떤 처음, 어떤 기쁨, 어떤 슬픔, 어떤 마지막 정도.
바쁨의 정도나 스트레스의 수준으로 따지자면 그간 겪은 그 거리끼는 감정들에 대해 누군가는 뭘 그 정도를 가지고?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다르니 이해하고 넘어가 달라. 그리고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글을 쓰지 않은 순간들을 말하기는 서운하다. 그래서 못 쓴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쓰려다가 말고, 쓰려다가 말고, 이걸 글로 남겨야 할까? 싶다가 말고, 그저 친구들과 만나서 나 이런 일이 있었어. 매일같이 채팅창에서 나 이런 짜증이 났어 정도로 지나가길 바랐고, 의미 있었던 어떤 일들은 밖에 얘기하고 싶지 않고 혼자 간직하고 싶은 일들도 있으니까.
짧게 메모하듯 쓴 글들은 있다. 순간의 감상, 기분, 느낌, 좋았던 것, 싫었던 것. 그 짧은 조각들 앞에서 바늘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엮으라고? 내가? 이걸? 실을 꿸 힘도 없었던 건 아닐까. 조각들만 늘어놓고 받기만 하고 보기만 하고, 요즘에는 그저 서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었다. 바늘은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를 꿰어야 할지 모르겠는 시간들. 약 24시간 전 2025년까지는 아무래도 그랬다.
그렇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다. 책을 읽으면 불안함이 가시는 효과를 알면서도 나를 좀 불안하게 두었다. 지금도 '좀'이라는 단어로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다고 방어한다. 많은 것을 보았다. 책은 빼고, 책은 사실 읽는 척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모노'는 읽었다. 거의 2025년의 책이라고 불리는 그 책이 궁금했다. 그리고 읽었다. 재밌긴 한데 요즘 소설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지막에는 대부분 '그래서 뭐...?'의 느낌만 남는다. 주제의식이 부족한가? 공감이 어려웠나? 나도 답을 모른다. 나는 등단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대단한 누군가가 대신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겠다. 재밌는 소설의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재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래?) 올해의 책은 아니겠지만 한겨레 문학상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상작을 바탕으로 쓴 단편 소설집을 재밌게 읽었다. 혼이 빠져나가서 멀리서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의 소설들이었다.
직업으로 쓰는 글은 많이 썼다. 그것도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시간 안에 써내야 하는 작업들이 많았는데,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 좀 더 낫게 써 봐. 그러나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제미나이는 너무 화려한 국문을 구사한다. 나답지 않아. 일이니까 나다운 글을 쓰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 어쩌면 사람답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이 이런 글 쓰는 일을 하는 것을 고깝게 여기는 누군가가 윤문해 준 것 같은 글들이었다. 그렇게 써서 보내면 누군가 또 챗GPT를 돌리겠지. 제미나이와 챗GPT의 싸움이다. 결국에는 구글과 오픈 AI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2026년 1월 1일에 쓰는 글인데 벌써 이만큼 썼다니 놀랍다. 사실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늘을 들 용기가 없었던 건지, 갖고 있는 실이 맘에 들지 않았던 건지, 조각들이 안 맞아 보였는지. 그 어떤 이유라도 2025년은 내게서 스윽 지나갔다. 어디 보자 2025년은 왜인지 낯선 사람들과 밥 먹는 게 힘들었고, 그렇지만 참고 해내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나 싶었고, 10년 전에 하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누군가 브이로그로 좀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길까지 오면서 했던 선택들을 돌아보게 됐다. 영화제에 또 관객으로 참석하기도 했는데, 제발 이제는 초청받아서 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관객으로서의 내 역할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것 같다.
여느 1월 1일과 같이 떡국을 끓이고 집안을 정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지난 2년 간 출근하면서 매일 아침 감사하다고 말하며 걸었는데, 어쩌면 매일이 감사해서,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들이 감사해서, 글을 안 써도 됐을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발자국 찍으며 걸어간 지난 시간 동안 매일이 그렇게 지나가서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올해는 그런 감정들도 모두 담아 한층 더 조려진, 숙성된, 탄탄한 무언가를 써내야지. 그럴 때가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병오년의 평범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