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늦게 찾아온 밸런타인 데이의 요정들
더 뱀프스 내한공연
어색하다. 광나루역 근처에 위치한 '예스24 라이브 홀'에 들어서면서 느낀 첫 번째 감정이다. '공연장'이라는 곳을 찾은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찾아보니 2019년에 갔었던 야외 페스티벌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공연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이 라이브 홀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달라진 것은 이제 4년이 지나 더 이상 20대가 아닌 나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20대가 아닌 나는 2층 지정석으로 향했다. 그래도 스탠딩 석을 선호했던 나인데,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싶었다. 사실은 이 공연을 보러 오기 전부터 <리쎌 웨폰>의 명대사인 'I'm too old for this'가 자꾸 생각이 나서 왠지 속이 쓰라렸다. 이미 와서 앉아 있는 지정석 관객들 사이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생각보다 의자가 작고 옆자리와 가까웠다. 지하철 좌석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간격감'이었다. '원래 이렇게 좁았나?' 분명 예전과 똑같은 '간격감'일 텐데, 이 마저도 조금 불편해졌다니, 이 공연장이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도착하면 대체로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일지 모를 음악들을 들으며 공연을 기다리는데, 오늘 플레이리스트는 내 것과 유사했다. 버스티드의 'Year 3000'라니, 이왕이면 맥플라이의 노래도 틀어주기를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다. 8시가 가까워지자 조금 긴장이 되었다. 너무 오랜만이기 때문에 텐션을 끌어올려서 즐길 수 있을까 싶었다. 지난 4년 간 웅크리고 살았더니, 공연장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옆사람들도 낯설었다. 이렇게 좁게, 가까이 앉아 있는데, 이렇게 낯설다니. 예전엔 어떻게 했더라, 자꾸 복기해 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8시가 조금 지났을까, 불이 슬며시 꺼지더니 휘트니 휴스턴의 'I wanna dance with somebody'가 흘러나왔다. 휘트니 언니가 '텐션 올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는데, 드러머인 트리스탄이 등장했다. 그리고 앉아서 혼자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드럼 소리가 쿵쿵 공연장 전체를 울렸다. 스틱을 휘두를 때마다 마법처럼 내 심장도 뛰었다. 나도 모르게 발이 두둥두둥 움직였다. 쿵쿵. 나도 그 드럼 비트에 맞춰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심장이 둥실둥실 두근거렸다. 두근거리던 심장은 비트에 따라 빨라지고 이제 쿵쾅쿵쾅 소리를 내었다. 처음에 공연장이 낯설게 느껴졌던 게 무색하게, 내 텐션이란 참 올리기 쉬운 것이었다. 그럴 때 즈음 다른 멤버들이 등장했다. 제임스, 브래들리, 코너가 기타와 베이스를 메고 달려 나왔다.
(↑라이브네이션 코리아에서 정성스레 올려준 사진들
- 내 자리는 너무 멀어서 그 어떤 사진에도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자, 그 이후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더 뱀프스의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공연은 유튜브로 여러 번 봤지만, 이런 밴드인 줄 몰랐다는 것이 나의 총평이다. '어쩜 저렇게 뛰어다니지?' 싶을 정도로 뛰어다니는 프론트맨 브래들리의 모습은 4년 만에 본 밴드 공연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감동적이었다. '오늘 밤을 최고의 밤으로 기억하게 해 줄게요'라고 약속부터 하고 시작한 그는 시도 때도 없이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제스처를 취하고, 호응을 유도하고,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머리를 쓸어 넘기고, 미소를 짓고, 손을 내밀고, 박수를 치고! 이 모든 것을 공연 내내 뛰어다니면서 했다.
그가 이렇게 뛰어다니는 동안 양 옆에서 제임스와 코너는 때로는 그의 장난을 받아주기도 하고, 함께 호응을 유도하기도 하면서 멋들어진 연주를 선보였다. (공연 중간에 슬쩍 자랑한 코너의 근육 또한 공연 중 자기주장을 슬쩍슬쩍 펼치기도 했다.) 드럼셋 뒤에서 스틱이 부러질 것 같이 드럼을 치던 트리스탄은 말할 것도 없다. 드러머가 곡을 끝까지 끌고 가면서 마지막 단 한 비트를 두고 관객들과 벌이는 밀당은 언제나 재밌다. 이렇게 영혼이 부서져라 연주하는 밴드인 줄은 몰랐는데, 90분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공연 내내 흥겹게 연주하는 그들과 함께하니 마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파티'에 초대된 기분이었다. 파티 주최자가 열정적인 덕분에 불편하게 느껴졌던 다른 관객들과의 간격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마법같이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같은 노래에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낸다는 이 간단하고도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얼마나 멋진지 다시금 깨달았다. '그쵸? 우리 모두 다 같은 밴드를 좋아하잖아요?'라는 공감대는 밴드의 신명나는 공연을 보면 서로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빠르게 형성된다.
사랑스러운 더 뱀프스는 이 파티에 와준 팬들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전날 마신 꿀주(90% of SOJU and 10% of Beer)를 자랑하고, 전날 배운 '킹받네'를 좋은 의미로 세 번이나 외친다. 지구 반대편에서 왔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나기에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을 아는 그들이 즐겁게 행복하게 돈도 많이 벌고 오래 공연했으면 좋겠다. 서로를 애정 어린 말투로 소개하는 그들을 보니 이제 20년도, 30년도... 아니 그 이상을 기념하는 파티는 매번 열릴 것 같다. 그리고 그 신나는 파티에 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SOME AWESOME MO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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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섹시하다!'는 소리에 '여러분은 섹시 비스트면서~'라고 한 브래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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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은 수줍고 말은 거의 안하지만, 셔츠 단추는 네 개 정도 훌렁 푼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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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자세로 모범생처럼 기타를 치는데, 호응 유도할 때 누구보다 신나고 기뻐 보이던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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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봤지만 땀방울이 떨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로 드럼을 치며 관객들의 심장박동을 책임져 준 트리스탄.
A LONG LONG TIME AGO...
- 이 때는 정말 정말 아가들이었는데...
- 이 영상으로 처음 더 뱀프스를 알게 되었다. 무려 맥플라이의 'That Girl'을 커버한 뮤직비디오다.
- That Girl 부를 때는 맥플라이가 그녀의 남친을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더기(맥플라이)가 무려 그 남친 역할로! (에다가 톰 여동생이 여자주인공으로 나온다.)
- 10년 전이라니... 맥플라이도 2023년 20주년 투어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