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온도

by 강제인

L 고등학교에 있던 5년 중 3년을 M과 함께 일했다. 5년 전 2월, 이제 막 교사가 된 M이 새 학기 준비로 어수선한 1학년 교무실에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M의 인사가 전하는 온도가 적당하다고 느꼈다. M은 나와 동료이던 시간 내내 그 온도를 지켰고, 나의 곁도 지켰다.

M과 함께 일하던 첫해에는 둘 다 마음을 써대느라 벅찼다. 나는 그해 헤아리지 못할 만큼 큰 정성을 들이고 있었고, 이후 다가올 상실감을 몰랐다. 그해 학생들, 8반을 사랑하는 일이 나의 전부였다. 오랜 연인과의 관계가 느슨해지고 망가져도 그들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 작은 호의와 챙김에 크게 행복해하고, 작은 언쟁과 불응에 크게 아파했다. 겁 없이 모든 걸 쏟아붓는 내 옆에서 M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저경력 교사인 우리에게 담임이라는 직책은 몹시 소중했다.

그해의 M 역시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한결같이 나보다는 의연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던 날조차 M은 처음 교무실에 들어서던 날과 비슷한 온도로 웃었다. 속이 상해버린 날이면 조용히 방에 들어가 술을 찾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돌보는 그가 동료이자 벗이어서 그나마 덜 휘청인 시절이었다. 때로는 함께 마셔준 덕에 덜 취할 수 있었다.

이듬해 M은 2학년을 맡았고, 팬데믹이 왔다. 각자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부지런히 변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종종 M과 만나 떡볶이를 먹었고, 여전히 1학년을 가르치는 내게 8반의 소식을 전했다. 멀어져 있던 1년이 지나가고 3학년 교실에서 다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믿은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던 모습은 변하고, 변하길 원하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관계의 모양이 바뀌자 나의 한 시절 전부가 빛바랠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에 압도되었다. 그 짓눌린 기분을 걷어내려 술을 찾는 날이 늘어갔다. 짧은 회기나마 상담을 받기로 했다. 2회 차가 되었을 때 나와 이야기하던 상담자가 울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결핍을 느끼는지, 왜 그렇게까지 타인에게 온 마음을 다해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는 마주하지 못한 채 상담이 끝났다. 지독한 여름이었다.

그런 나의 맞은 편에 M이 앉아 있었다. 여전히 처음 만나던 날과 비슷한 온도의 M은 종종 상담의 추이를 물었다. 잘 다녀왔느냐고 M이 물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타인을 향한 실망은 멋대로 키운 기대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을 때, 그러니까 나 역시 변했을 때 눈이 왔다. M과 내가 줄곧 봐온 사람들이 대학교에 합격하고, L고를 떠날 준비를 했다. 마침내 그들을 배웅하던 날, 졸업식을 마무리하고 모인 회식 자리에서 나는 자꾸 울컥거렸다. 붉고 물기 찬 눈을 들키지 않으려 화장실에 갔는데 눈물은 더 터졌다. 세면대에 선 채 눈을 박박 문지르는데도 울었다.

그날 M은 나를 따라왔다. 들뜬 모습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나를, 그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을 진절머리 날 정도로 못하는 나를 모두 지켜본 M은 가만 서서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일 년 더 함께 일하는 동안 우리는 지난한 일을 몇 가지 더 겪었고, 각자 다른 도시로 학교를 옮겼다.

여전히 나는 학교에서 잘 해내고 싶고, 곁의 학생들을 지키고 싶고, 변화를 낯설어 한다. 그래도 아직 선생님을 더 하고는 싶어서 마음이 식지 않는 적당한 온도를 찾고 있다. M은 그 온도의 기준이 되는 사람인데도 걱정한다. 예전과 다른 마음인 것 같아요. 저도 변하고 있는 걸까요.

변화를 감지한 M의 마음이 시들대는 날에는 언제든 나를 찾아주기를 욕심낸다. 아직 나는 들어주고 이해하는 일에 큰 힘을 쓰는 사람이고, M에게는 언제든 그 힘을 써도 좋다. 함께 일하던 시절 속 우리가 아득해지는 날이 와도 괜찮다. 그때의 우리에게 적당한 온도를 찾으면 될 일이고, 우리는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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