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감수하는 연습

나의 그릇은 어느 정도일까

by 사대영역

그 여름의 캠핑

지난 여름 자연휴양림 캠핑장에 텐트를 쳐놓고 4박 5일 묵은 적이 있었다. 요새는 캠핑장들도 화장실 샤워실이 아주 좋은 곳이 많은데, 그 자연휴양림 화장실은 시설은 좀 달랐다.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지만 문제가 있었다. 숲속에 전깃불을 밤새 켜두는 곳이니 곤충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다.

손바닥만한 나방들이 열 마리쯤 날아다니고 천장과 벽과 바닥에 각종 하늘소 나방 모기 각다귀 사마귀 등등이 붙어서 방문객을 반기는 곳이었다. 참새만한 나방이 날아드는 곳에 도시에서 자란 딸 둘을 데리고 들어가 샤워를 시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곤충 관찰을 좋아하는 아이들이고 큰애는 곤충학자가 꿈이기까지 하건만, 아이들은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들어가지 못했다. 나 역시 담대한 편인데도 그 정도 크기의 살아 움직이는 나방은 처음 보는 것이라 쉽지 않았다.(나한테 날아들 때는 분명히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곳을 4박 5일의 숙소로 선택했고 그 화장실을 사용해야만 했다. 변기 아래에 붙은 하늘소를 애써 외면하고 아이를 달래 화장실을 사용했다.(하늘소랑도 눈이 마주친 것 같다!!) 전자모기채를 휘저으며 아이들 샤워를 시켰다.

"여기는 원래 이 곤충들의 집이고 얘들이 원주민이야. 우리가 얘네가 사는 집에 쳐들어 온 거야. 너희를 공격하는 애들은 엄마가 쫓아줄 수 있지만, 우리가 얘들을 혐오할 권리는 없어."

이런 소리를 해가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아이들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벽에 붙은 나방을 관찰하며 화장실을 사용하고, 바닥에 뒤집어진 하늘소는 손으로 집어다 안전한 곳에 놓아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캠핑 전 나는 집에서 초파리와 가끔 배수관을 타고 들어오는 날벌레 때문에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캠핑에서 집에 돌아와보니 모든 것이 너무 귀여운 수준인 거다. 화장실에 붙은 아기 손톱만 한 나방 한 마리로 나는 왜 그리 나를 괴롭혔던가. 모든 것이 참 쉽고 수월하게 느껴졌다.

작년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미국의 고전 『초원의 집』을 잠자리 독서로 아이들에게 읽어주었었다. 로라는 아버지가 얼기설기 지은 판잣집에서도, 튼튼한 통나무집에서도, 진심으로 안온함을 느끼고 행복하게 자란다. 로라 엄마는 둑 아래 잔디 뗏장으로 벽을 만든 굴에서도, 인디언들이 습격해 오는 대초원에서도, 8개월간 이어진 눈 폭풍과 식량 고갈에도, 그 잦은 이사와 개척 농부의 삶 속에서 어떻게든 꿋꿋이 감사하게 삶을 꾸린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한 상황에서 불평하지 않고 그 순간을 지혜롭게 넘기고 견디어내는 것. 그 여름 그 캠핑장에서 우리는 로라와 로라의 엄마를 많이 떠올렸다.

로라의 엄마가 겪는 고난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의 삶에 벌어지는 큰 고난들을 마주하면 이전의 작은 고난들은 매우 사소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후에 진정으로 현실을 감사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어릴 때는 더 못한 사람을 보며 하는 감사가 어쩐지 치사한 위선이자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은 굶고 있으니 지금 밥 먹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하게 느껴졌던가. 진정 내가 굶어봐야 오늘의 밥이 소중한 줄 아는 것이다.


이게 정말 못 견딜 불편일까?

역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겪는 오늘의 불편이 정말 심각한 불편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위기라고 생각하지만 더 바닥은 얼마든지 있고, 더 심각한 일은 얼마든지 많을 수 있다. 나는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불평없이 맞추어 살 줄 알아야 한다.

생활비는 늘 더 아낄 곳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신차리고 쥐어짜보면 쥐어짤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른걸레도 쥐어짜면 한 방울 나온다던가. 내 걸레 정도면 촉촉한 편이었다는 걸 깨닫는 나이. 더한 고난들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 자기 위안을 벗 삼아 오늘의 현실을 살아내는 나이가 되었다.

『초원의 집』 속에는 로라의 가족이 8개월 간 계속되는 눈보라로 고립되는 상황이 나온다. 온 마을이 눈 속에 파묻혀 기차도 오지 않고 식량도 떨어져 간다. 돈이 있더라도 식량을 살 수가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근면성실하던 엄마는 연료와 식량을 아끼기 위해 아이들을 느지막히 일어나게 하고 두 끼만 먹고 잠을 재운다. 남은 감자를 아껴서 쪄먹고 그마저도 서로 먹으라고 양보하는 상황. 버터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다가 애써 감자는 그냥 먹어야 제맛을 알지 하며 위로하고 있는데, 눈보라를 뚫고 손님이 찾아온다. 아버지의 친구는 귀한 식량과 버터를 가지고 방문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버터가 있다는 사실에 나부터도 안도하고 감사하게 된다. 이 아이들에게 버터라도 생긴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천재지변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들이 그래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감사하며 바른 정신으로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잔잔하게 느끼게 된다.

이 대목에 감명받은 나도 생활비를 아끼겠노라며 찐 감자와 냉동실의 미트볼, 버터, 밥, 삶은 완두콩으로 저녁밥을 차린 적이 있었다. 남편은 이게 뭐냐며 당황했지만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냉털요리지만 ‘서부개척식 식사’라며 서로 즐겁게 먹었다.


장을 볼 때나 물건을 구입할 때, 이게 없으면 죽는가 생각해본다. 음식에 재료 하나 두 개 빠진다고 큰일이 나지 않는다. 저녁 한 끼 갖추어 번듯하게 먹지 않는다고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키울 때 이 아이템이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아이템이 없어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 멋진 교구가 없어도 우리는 한글을 읽고 숫자를 셌다. 예쁜 밀대걸레가 없어도 청소는 가능하고 정리함을 사지 않아도 집을 단정하게 할 수 있다. 버터가 있으면 감사할 줄 아는 삶. 나는 얼마만큼의 불편을 불편해하고 또 감당할 수 있는가.


작은 불편을 감수해보는 연습

캠핑의 유용한 기능 중의 하나가 작은 불편을 감수해보는 연습이라고 한다. 캠핑도 편리하게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각종 대단한 장비가 넘쳐난다. 그러나 가끔은 좀더 소소하게 좀더 불편하게 우리는 우리를 단련하려 한다. 변화무쌍한 사계절 날씨 덕에 한국인이 어디가서나 적응하고 잘 지낸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좀더 다양한 불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양하게 적응하고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 느낀다.

좀더 유연하게, 불평없이, 감사하게 그렇게 살아야겠다.

나의 그릇을 좀 더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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