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의 시작 -2
그렇게 고등학교를 집에서 멀고도 먼 동네 - 버스로 1시간이 넘는 곳으로 진학했다. 동네 아이들 하나도 따라오지 않았고, 거기에서는 ‘왕따인 애’의 허물을 벗고 다닐 수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삼삼오오 놀러 가던 애들 사이에서 홀로 집으로 들어가야 했던 중학교 시절과 달리 처음으로 친구들과 외식을 하고,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그다음 문제가 보인다고 했나, 이제 다른 문제는 집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창문이 깨져 있었다. 싸웠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주듯이 의자가 널브러져 있었고, 신발장 옆에 고스란히 쌓아둔 신문지도 여기저기 흝어져 있었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빠의 러닝셔츠는 손자국 대로 늘어나 있었고, 엄마는 집에 없거나 방 한구석에서 화를 내뱉으며 씩씩 거리고 있었다. 또 마주하는 풍경이 나는 지긋지긋했다.
새로울 게 전혀 없는, 우리 집의 평범한 일상.
내 어릴 적 자장가는 엄마 아빠의 고함소리였다. 귀가 째질듯한 하이톤의 목소리와 낮은음으로 집안을 울리는 두 분의 목소리, 몸을 부딪히는 주먹의 둔탁한 소리, 가끔 가구가 쓰러지는 소리들 속에서 이불을 덮으며 자야 했다. 둘의 싸움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도 모르는 스파크가 튀는 피복이 벗겨진 전선들이었다. 가끔은 그 불똥이 나한테 튄다는 것도.
한 번은 싸움에 휴전 중이던 - 방바닥에 앉아 있던 엄마가 부엌에 물을 마시러 나온 나한테 그랬었다.
너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어쩌라는 건지. 이미 낳으신거 도로 들어갈 수 없고…그때는 그렇게 넘어갔지만 그 말은 한동안 내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언제까지 이 걸 겪어야 할까. 열일곱 살이 되자 처음으로 든 물음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제 곧 스물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스무 살, 어른이 되는 시작.
스무 살이 된다는 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무런 선택지가 없는 삶에 처음으로 선택지가 주어지는 거니까.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누군가의 허락을 맡지 않고 멀리 떠날 수도 있으니까.
학교 내 상담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나는 길고 긴 계획을 세웠다.
집을 탈출할 수 있는, 합법적인 도망 - 타지로 대학 입학하기.
그래서 손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하고,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렸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던 탓인지 학원 내에서도 ‘그림 좀 그린다’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항상 긴장감과 압박감 때문인지, 막상 시험이 되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인지 고3 현역 시험을 말아먹고, 재수까지 한 뒤에야 겨우 타지 대학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