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의 시작
TW: 아동기 정서적/신체적 학대, 학교폭력, 자기혐오에 대한 서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약한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어쩌면 그건 처음 마주하는 학급이라는 사회에서 본능대로 생존하고자 하는 생존본능 과도 같은 게 아닐까.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덜 좋은 척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니 학급은 야생의 본능이 더욱 가까웠다.
왕따를 당하는 이유가 있을까? 아이들은 내가 음침하다고, 매번 약한 척한다고 싫어했었다. 사실이긴 했다. 집에서는 거의 매일 부모님의 싸움소리와 물건이 깨지는 소리에 잠이 들고 체벌이 있는 날에는 손찌검으로 아침에 일어나다 보니 몸은 항상 긴장 상태에 있어서 약하기도 했고, 약한 척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관심을 얻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동했었다. 그러니 애들이 싫어할 수밖에.
학교도, 집에서도 어디 한 군데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겉도는 나는 생각했다. 네가 좀만 더 공부를 잘했으면 아이들이 날 무시하지 않고 엄마도 좀 널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네가 좀 더 예뻤다면 학교에서 그런 취급을 안 당했을 텐데.
거울 속 이마에 여드름이 잔뜩 난, 뿔테안경을 낀 나 스스로를 바라보며 생각하다 이내 내가 종이였으면 좋겠다며 소원했다.
내가 종이라면,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있는 힘껏 박박 찢어발겨 이 세상에 사라질 수 있을 텐데,라고 한껏 아쉬워했다.
아주 길고 긴, 자기혐오의 시작이었다.
여러 초중고가 모인 학군지 동네에서 고등학교도 이 동네에 다닌다는 건 초중 시절 달고 다닌 왕따라는 현수막을 들고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길고 긴 왕따 생활이 너무나도 진절머리가 났고, 중학교 때 나는 하굣길 도서관에서 나오며 신발끈을 묶으며 결심했다.
이 동네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버리자고, 동네 애들 따위가 상상할 수 없는 곳으로, 아무도 나를 따라 찾아오지 않는 곳으로.
그게 내 인생의 첫 도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