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W: 아동기 정서적/신체적 학대, 가정 내 체벌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 아마 초2나 3학년 때였던 거 같다. 간단한 시험을 쳤고, 80점 (지금 생각해 보니 79점인 거 같았다) 시험지를 들고 성적을 보여달라는 엄마의 말에 자랑스럽게 꺼냈다. 이 정도 점수면 나쁘지 않지,라는 내 생각과 달리 엄마는 지금 이 점수받으면 중학교 때 가서는 어떻게 할 거냐, 라면서 호되게 혼났다.
혼나면서 들었던 생각은 당황스럽기도, 내가 만족한 점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 너의 기준은 틀렸어’라는 부끄러움이 들었었다.
혼자서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엄마는 아무 기댈 곳이 없어 어린 자식이었던 나에게 기댔다. 구연동화에서 상을 타오면 우울과 분노에 쳐져 있던 엄마가 기뻐하면서 전화를 돌리는 모습은 ‘내가 더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구연동화가 재미있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엄청 좋지는 않았다. 아마 장려상을 몇 번 타고 나서야 나도 스스로 실망감에 접었던 것 같다. 대상도 아닌데. 뭐가 잘한 거지?라고 빳빳한 장려상 상장 종이를 손에 쥔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언가 잘 해내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항상 그 마음과 결과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를 푸는 내 곁의 엄마의 시선은 날카로웠고, 시선에 얼어붙은 내 머릿속에는 문제의 말들이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답을 망설이거나 쓰지 못하면 망설임 없이 폭언과 손찌검이 몸을 강타하는 번개처럼 날아왔다. 그게 어느 곳을 향하는지는 몰랐고, 심지어 내 옆에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멈춰주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 엄마를 기쁘게 하겠다는 내 바람과 달리, 현실에서는 나는 ‘공부 못하고 쪽팔린 애’가 되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었지만 피하고 싶었고, 학교에도 정을 붙이지 못해 내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어느 정도였냐면 성적 확인을 위해 사인을 해야 했을 때, 애들은 내 성적을 적나라하게 표시해 내 점수를 학급 안 광대로 만들었다.
상황을 모면하고자 여러 다른 편법들을 썼지만 그게 어른들 눈에는 허술한 아이의 거짓말이었다. 한번 들키고 나면 훈육이 아닌 체벌이 쏟아졌다. 그게 언제 끝날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잘못했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번에 안 그런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데?’라는 말 밖에 없었다.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요.
그저 잘못했다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밤늦게까지 체벌에 시달리고 나서야 겨우 침대에 누웠고, 지친 몸이 긴장 속에 까무룩 잠들다가도, 화가 덜 풀리는 엄마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몸에 가해지는 아픔에 눈을 강제적으로 뜨는 아침들이 많았다.
나는 실패한 아이였다. 그 당시에는.
*이 글은 메인 이미지 외 추가 시각 정보 없이 구성되었습니다. 독자의 감정 공간을 존중하기 위한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