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붙잡으며
내가 붙잡고 싶었던것

증명하고 싶었던 건

by Zov

전 남자 친구와는 아주 오래된 연애의 이력이 있다. 2년 동안 사귀면서 1년은 가까이 마음을 졸이며 사귀었다. 스스로의 마음에도 이 관계는 아니라는 직감이 있었지만, 그 직감을 배신하고 누구보다 보란 듯이 결혼해서 잘 살아내 남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내 치기 어린 오기와 증명이 내 안에 있었다.


전 남자 친구, 그러니까 A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주말에도, 시간이 나면 붙어 있고 싶은 나와 달리 A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바운더리가 중요한 - 어떻게 보면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가지런하고 순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결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신체 한 부분은 장애를 가지고 있고, 남들보다 평균 키가 작은 A는 스스로의 약점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게 스스로도 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그 누구보다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나는 전혀 그게 상관없었는데. 그냥 나보다 한참 연상인 A에게 항상 귀엽다고 입에 달고 살았다. 진짜 그렇게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A와 연애를 하면서 연애는 평탄해 보이긴 했지만 나는 때때로 잠에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결혼해라-라는 사회적 압박을 무시할 수 없듯이, 나는 그렇게 그 사람에게 끝없이 물었다. A가 회피할 때마다 그를 앉혀다 놓고 말하는 건 내 역할이었고, 그에게 늘 캐묻는 건 나였다. 나랑 결혼할 생각은 있어?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좋으니까 하겠다는 의지만이라도 보여달라... 등등.


그 안에서 나도 서서히 지쳐갔던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를 놓을 수 없었던 건, A가 주는 안정감과 막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해 실수를 저지르는 나를 달래주고 실수해도 괜찮아, 다음번에 그러지는 말고 너무 자책하지 마.라는 따스한 말들이었다.


말. 한평생을 넘게 부정적인 단어들 - 네가 실수하면 그 다음번에 잘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데? - 말만 듣다가 A가 하는 말들은 내 존재를 울렸다. 그래서 무언가 맞지 않아도, 내 옆에서 달래고 위로해 주는 A를 떠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내 자존심을 버리고 헤어지자고 말했던 A의 집에 달려가 엉엉 울면서 빌 정도로.


그러나 결국 끝은 있다고, A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헤어짐을 고했을 때, 그 당시에는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잠시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그다음 날 밤에 긴 시간을 달려가 그를 마주했다. 모든 오기나 체면 따위는 내려놓고, 나 한 번만 제발 믿어 달라면서 애원했다. 사랑이 영원히 가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3년이고 5년이면 사라지겠지만 곁에서 영원한 편 되어 주겠다고. 간절했던 바람 덕분일까,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다. 늘 무언가를 참아내던 A 조차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우리는 눈물로 서로를 녹였다.


결혼을 결정하기 전 나는 A에게 말했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제발 한 번만 상의해 보고 얘기해 보라고. 사실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다. 나 만큼 좋은 여자가 어디 있다고. 나를 보지 않았지만 누구든지 나를 얘기하면 A에게 결혼해라는 말을 하겠지,라는 여전한 어린 치기가 있었다.


하지만 A는 그 많은 상담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스스로는 아직 친구들이 좋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했지만 글쎄, 나는 그것이 본인의 싫은 면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더 나아가 사랑은 있었지만 내 바람을 이뤄주는 사랑까지 아니었다는 걸 인정했다. 이러지 말라는 내 오열과 절규에도 A는 끝끝내 한 걸음도 비켜주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홀로 떠난 속초의 항만에서 수화기 너머로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근황은 어떻게 사는지, 홀로 있는 주말은 잘 보내는지, 밥은 챙겨 먹는지, 병원은 가는지...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나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나 사랑해? 두서없는 질문에 A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상했던 답변이라서, 나는 그냥 웃었다. 오빠 답다고, 오히려 나는 A 가 입바른 소리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언가의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랑했지, 이유를 떠올리며 다시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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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A의 집에서 머물 때 나는 안간힘을 써서 이 사람의 온기와 향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내 노력과 달리 순식간에 그 온기나 향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인형에 뿌렸던 A의 향수 냄새를 간신히 찾아가며, 이제는 기념일로 받은 말라비틀어진 장미를 침대 머리맡에 남겨두면서 나는 그 지나간 시간을 간신히 잡으려 애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향도 사라질 테고, 장미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겠지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그 시간을 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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