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하고도 가장 두려워하는 -1
엄마와 딸은 아주 기묘하고도 애정과 애증이 섞인 관계가 아닐까.
휴학을 하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자취방에서 있으면서 알바를 했다. 카페 알바였고, 전공과 상관없는 알바라 머리는 식히기에 좋았다. 물론 거기서 서비스직은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닫긴 했지만.
한정적이었던 6개월의 휴학 뒤에 나는 6개월을 더 휴학했다. 총 1년. 아직 무언가 덜 회복했다는 생각이 컸다. 그게 뭔지는 나도 몰랐지만, 지금 상태로 학교에 돌아가봤자 똑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반대가 있었지만, 몇 번의 설득 끝에 총 1년의 휴학을 했다.
그 휴학기간 동안에 엄마를 이해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10살 연상인 아는 언니가 있었는데, 예체능 쪽으로 능력 있고 - 심지어 교수님이 해외유학 추천서까지 써줄 정도의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우아하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말투도 조용조용하고, '단아하고 우아한 여자'의 표본을 찾는다면 단연코 이 언니를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었다.
상황은 그랬다. 커피를 마시던 도중, 두 살 터울의 딸들 - 두 살 과 네 살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언니에게 매달렸다. 그중 한 명을 내가 달랬었지만 아이들은 낯선 손님보다는 익숙한 엄마에게 붙기 바빴다. 아이들이 컨트롤이 되지 않자 언니는 처음에는 조용히 타일렀다. 그러면 안돼, 손님 있잖아.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더욱 뛰어다니고 버둥거리기 바빴다. 언니의 목소리는 조금 더 단호해지고 커졌고,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통제가 되지 않자 이내 갑자기 소리 지르며 화를 냈다.
"엄마가 하지 말랬잖아! 왜 말을 안 들어!"
왈칵 쏟아지는 화에 아이들은 얼어붙었고, 앞에서 커피를 마시던 나도 당황감에 얼어붙었다. 길고 긴 찰나의 침묵이 집 안을 휘감았다.
그제야 언니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내 앞에서 분노를 참지 못했다는 수치심과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는 자책감에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들과 나에게도 사과하면서 독박육아로 지쳤다는 말을 덧붙였다.
언니의 사과와 눈물을 받으면서 나는 그제야 문득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
어린 30대, 두 살 터울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
무책임한 남편 대신에 집 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