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은 매섭고도 다정했다

가장 사랑하고도 가장 두려워하는 -2

by Zov

이야기하기 전, 앞서 얘기하자면 아빠는 내게 좋은 아빠였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물론 아빠가 저지른 실수는 크고 방대해서 아빠 나름대로 회복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에 가정을 책임지는 건 엄마가 되었다.


나이를 좀 먹고 나를 낳았을 때의 엄마와 비슷한 또래가 되자 더욱 이해가 가긴 했다. 어른이 된 나도 아직 모르는 게 너무나 많은데, 엄마는 어땠을까. 두 살 차이 나는 어린 자식과 핏덩이를 안고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남편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던 제일 처음으로 절망을 느낄 것이고, 그다음은 도망가던지, 아니면 책임을 마주해야 됐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에게 도망치라고 했었다. 아이들을 놓고, 남편과 이혼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혼이라는 게 요즘처럼 흔한 일은 아니라 손가락질도 두려웠지만, 제 품으로 낳은 자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랑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몇 번 아빠와 헤어지려고 기차역에서 자식을 할머니 품에 안겼지만 떠나지는 못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삶 중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당신을 위로해 주길 바랐기에, 나와 형제의 성적은 엄마의 '보상의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문제를 하나 틀리더라도 이때까지 참았던 서러움과 슬픔,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한 비참함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그녀를 보여줘서, 그녀는 이성을 잃고 분노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 분노는 어린 나와 형제가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고.


나는 그때의 엄마가 아니라 그녀의 고통이 어땠을지는 어렴풋하게 이해를 하지만, 가끔은 서러웠다.


엄마의 친적들 - 엄마의 동생들과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이해해 줘라'라고 얘기했지만, 정작 그 이해를 강요받았던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고, 누구도 내가 받는 분노와 손찌검이 부당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엄마의 기분을 항상 살피던 나를 안아 줄 사람은 온전히 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계기는 모르지만, 내가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던 어느 날 엄마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나를 소파에 앉혀두고 입을 땐 엄마는 말했다. 그때 어린 너를 그렇게 때리는 게 아닌데, 너무 미안하다고. 그 말은 나를 때리고 나서 그다음 날 죄책감에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닌, 속에서 나온 사과였다.


사과를 하는 엄마의 얼굴은 조용했지만 더 어딘가에 묻어둔 깊은 슬픔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왜 사과를 받아들였는지 여러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저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엄마니까였다. 엄마의 손은 나를 쉴 새 없이 때리고 분노를 여실히 드러낼 때도 있었지만 그 한편으로 내 비싼 미술 학원비를 대고, 감기에 걸려 자는 내 이마를 짚던 다정한 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사랑이 늘 따뜻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었다는 걸.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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