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한마디
앞선 모든 얘기에서 부정적으로 집을 묘사하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던 순간들은 있었다.
아침까지 대리운전을 하던 아빠는 내가 등교할 때쯤 집에 들어와 내가 하교할 때 일어나셨다. 집으로 향할 때 집 베란다 창으로 담배를 피우는 아빠를 매번 볼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 아빠와 짜장면이나 울면을 먹을 때도 있었고, 천 원이나 이천 원 정도를 용돈으로 받아 마트에서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물고 다시 집에 들어와 숙제하기 전에 티브이를 봤다. 요즘 아이돌이 어떻고 쟤들 곡은 어떻네. 실없는 소리들을 나누면서.
그때 살았던 아파트의 가로수가 모두 벚꽃나무였다. 그래서인지 봄이 될 때쯤이면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아파트 단지 내가 전부 하얀 연분홍 빛으로 물들여졌다. 영원하지 않을 한때의 찰나 이긴 하지만, 학교 아이들의 괴롭힘과 집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매 순간의 순간마다 모든 것들이 가끔은 인생을 살아지게 만들었다.
가을에 노랗게 물들던 은행나무, 가끔 하굣길에 몇 없는 친구들과 사 먹던 아이스크림과 과자들, 그리고 어른들의 다정한 한마디.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쥐어주던 사탕 몇 알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 에에올에서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장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친구와 내가 같이 공통적으로 공감했던 - 'Be kind'라는 한마디였다. 허무와 냉소가 몰아치는 영화의 세계 안에서, 웨이먼드의 그 한마디는 에블린의 행동을 바꾼다.
긴 시간을 살면서 버텨올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다정한 한 마디와 시선 한 조각 덕분이었다.
그래서 우리, 조금만 다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