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야 하니까

화해의 역사

by Zov

엄마와의 화해는 일단락되었다. 부산에 내려가면 데이트를 할 때가 있고, 가끔 내가 만났던 남자들, 연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기차역에서 얼굴을 보자마자 싸우거나 사소한 말 한마디로 전화 너머로 싸울 때도 있었지만 여느 엄마와 딸 - 모녀 관계가 그렇듯 평범하게 지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나였다.


내 인생에서 절반 넘게 차지한 어린 시절의 후유증 때문인지, 나는 항상 내가 어려웠다. 주변 상황들이 가끔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삶이 평탄하다고 해도 나 스스로가 그렇지 않게 만든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미디어나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세요'라고 떠들고 방법들을 공유했지만 나는 그 방법을 볼 때마가 말문이 막혔었다. 아니, 방법은 알겠는데 어떻게 해라는 건지. 영 감도 안 오고 가끔은 인생을 다 아는 것 마냥 얘기하는 사람들을 조용히 미워하기도 했다.


나는 만족하는 법을 몰랐다. 성적을 봐도, 내가 한 디자인의 결과물을 봐도. 학교에는 어떻게 보면 재능을 타고났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다. 숨 쉬듯이 자괴감을 느껴보신 적 있으실까요? 전 대학생활 동안 그랬습니다.


대학 시절 번아웃이 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너무나 미워하고 있었구나. 아주 옛날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지만 사랑을 받았던걸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이제는 자발적으로 '기준에 맞지 않는 나'가 되어버리면 나는 스스로를 너무나도 미워했었다. 그게 직접적인 표출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 항상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윽박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은 잘 해내는데, 너는 왜 못해?


그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을 하고, 두 번의 퇴사와 두 번의 인턴생활을 반복하다가 이제는 스트레스가 몸 밖으로 표출되는 걸 느꼈다. 한번은 숨이안쉬어 지는 공항이 왔었고, 그 뒤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목에 숨이 턱 막혀오면서 숨이 가느다랗게 쉬어지고, 구역질이 몰려왔다.


몇 번의 수많은 고민과 친구들의 상담 끝에 정신과를 방문했다. 검사를 받고, 몸에는 이상소견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고 아주 미세한 용량의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약을 먹으면서 증상은 조금 완화되었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기에는 신경 쓸 시간들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를 돌볼 타이밍을 주지 않고 또다시 외부의 일들에 내어주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 모든 신경은 외줄기를 타듯 전남자친구 A와 이별과 일이 쏟아질듯 밀려오는 회사일로 매우 바빠 스스로를 챙기기 보다는 계속해서 타인을 신경 쓰고만 있었으니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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