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계속 몰아치고

인생은 동화책이 아니니까

by Zov

사실 속초 여행은 얼렁뚱땅 이었다.


바텐더와 택시 기사님이 추천해 준 식당 두 곳 중 한 곳은 1인은 안 받고, 다른 한 곳은 갑자기 개인사정으로 휴무했으며 그때 탑승한 택시 기사님의 추천으로 간 함흥냉면집은 굉장히 맛있었지만 첫 끼에 매운 걸 먹으니 배가 아팠다. 햇빛은 뜨겁게 내리쬐는데, 샘플로 가져온 선크림은 손에 바르기까지 너무 부족했고, 결국 손등이 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했던 건 주택과 건물 사이를 걸으면서 저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다는 걸 알리듯 맡아지는 짭조름한 소금 내가 담긴 해풍 탓이었다.


해풍, 바다, 그리고 파도. 나에게 익숙한 것들.


가끔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왜 부산에서 서울로 온 거예요?


그 물음에 나는 항상 피상적으로 대답했다. 부산 살기 좋죠,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공기도 서울보다 맑고. 근데 서울에 문화생활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요, 부산에서 디자이너 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등등. 그 물음 내면에 나는 조용히 덧붙였다.


사실은 그게, 도망쳐 왔으니까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조용한 답변이었다. 내 인생은 도망으로 이뤄져 있었다.

첫 도망은 고등학교였고, 두 번째 도망은 부산에서 서울로, 지금은 서울에서 속초로. 잠시이긴 하지만.


그중에서 부산을 나왔던 건 자발적인 이유이기도 했지만, 타의적인 이유도 있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서울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기억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 도망이라고 붙인 건 부산에서 있었던 싫은 기억들을 마주 보지 않으려 나온 것도 있으니까.


그래서 부산이 좋기도 했지만 은근히 불편했다.


옆 문이 열리면 서로 닫기 바쁜 서울과 달리 엘리베이터를 타면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작은 스몰토크를 하고, 가까이 걸어가면 바로 볼 수 있는 바다와 거친 해풍, 걸을 때마다 발을 감싸는 모래들. 하지만 가끔은 바다가 불편했다. 예전에 서핑을 배우고 조금 파도가 시작되는 곳으로 갔을 때, 서퍼보드에서 발을 내리자 발 끝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생각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공포가 밀려왔고, 주변 서퍼분의 도움으로 파도를 타고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몸이 벌벌 떨렸다. 그 뒤로는 바쁜 것도 있었지만, 서핑을 할 엄두가 잘 안 났다.


가끔은 도망치면 그걸로 끝이길 바랐다. 마치 동화책의 결말처럼 깔끔하게 끝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계속해서 선택에 대한 책임들과 도망을 치고 나서의 결과들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그게 삶이지.


50분을 넘게 걸어 바다에 도착했다. 티셔츠 위에 걸친 셔츠가 해풍에 날아갈 듯 휘날리고 세팅한 머리가 바람에 거칠게 휘날릴 때 나는 그제야 알았다. 바다에 다 왔구나.


파도가 계속 밀려오는 해변에서 하얀 거품과 파도 속에 춤추는 해초들을 보고 나는 스스로 속삭였다.


안녕, 나 왔어.


그 한마디에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집에 나갔다가 드디어 돌아온 기분이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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