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의 끝은 원점
아주 친한 친구 - 같은 부산 출신이지만 타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와서 만난 친구와 걷고 있었다. 그때의 서울의 날씨는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했고, 그날은 비까지 내려 날씨가 쌀쌀했다. 보통은 안 그러는데, 서울에서 부는 바람이 거칠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친구와 나는 그냥 서로 웃었다. 하기야, 바다 근처에서 자란 우리들은 거친 바람이 일상이었으니까.
그날 왜 속초를 가야겠다고 결심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끝이 없는 수평선을 보고 싶었고, 짜고 비릿한 소금 내를 맡고 싶었던지 - 그런 이유보다 그냥 그 앞에 서야 끝없이 일렁이던 마음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반평생을 바다에서 도망쳤는데 결국에는 다시 바다로 도망이라니.
사실은 조금 우습고도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이제 와서 웃기기도 하는데,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더니, 그런 맥락인가?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다만 그것보다는 결국에는 찾게 되는 건 바다라는 사실이 마치 숙명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운명을 다는 믿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있었던 - 어쩔 수 없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내 선택이었다. 부산을 벗어나고자 타 대학을 선택 것도, 외로움에 삼켜질 자취를 선택한 것도, 그리고 A를 만나고 B를 만나고. 이런 것까지 다. 그래서 항상 선택에 대한 책임도 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바다가 나를 부른 건 운명일까, 아니면 책임에 따른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한 나 자신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나를 드디어 찾으러 간 걸까.
갈려던 가게도 문을 닫았고, 뜨거운 햇빛아래 장장 한 시간 정도 쉴 새 없이 걸어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었다.
바다에서 다시 바다로.
나는 도망이 아닌 내 기원(起原)으로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