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지도 못했던 사랑에 대한 장례식에 관하여 - 1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라는 생각을 수십 번 하면서 글을 적어 내렸다.
서로 사랑했다는 말을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까. 그건 사랑을 한 시작부터 카운터를 적용해 적어내려야 했나, 아니면 사랑하는 동안 둘이 나누었던 시간들로 규정을 해야 할까. 지금부터 이야기할 B에 대해서는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아 나 조차도 말을 망설였다.
B와는 독특하게 만났다. 만나기 전부터 우리는 기본 두 시간, 세 시간에 이르는 몇 번의 전화통화 끝에 B를 역 근처에서 마주했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한 약 이틀 동안에 수많은 것들이 급류처럼 쏟아져 내렸고 B는 결국 '너를 정말로 많이 좋아하지만 내 미래의 배우자가 아닌 것 같다'라는 말로 도망쳤다.
정말로 KTX를 타고 가면서 봐도 스쳐 지나간 인연이고, 괜히 연연하는 것도, 이렇게 '시작도 못했던 사랑에 대한 장례식'이라는 의미가 무거운 단어를 붙이는 것도 스스로도 이상한 일이란 건 안다. 하지만 얼굴을 마주했던 시간이 짧았다고 사랑이 아니었다고 부정하기에는 이미 서로가 명백히 알고 있었다. 물론 B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B는 독특한 애였다. 한국인 피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인이 아니었고, 한국어를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다중언어를 묘사하는 친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첫 통화는 거의 낄낄거리기 바빴고 농담과 우스갯소리, 그리고 자기주장이 강한 B의 말에 나는 속으로 놀라면서도 그 애의 이야기를 들었다. 거친 단어들도 오고 갔고, 나는 그때 B를 우연히 만난 동네친구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다음 날을 넘겼다. 그다음 날 왜 연락이 없냐는 B의 물음에 나는 너 심심해? 라고 무심하게 대답했고, 그리고 두 번째의 통화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통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B가 나를 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애는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이야기해 주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사실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는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끔 어떤 기억들은, 수화기 너머의 말 보다 그 말을 듣고 있었던 내 방의 조명, 그리고 공기, 그 애의 다정한 말투 같은 느낌들만 기억하게 했다. 자기주장이 센 것과 다르게 그 애는 그 애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고, 그게 가벼운 논리들은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의 통화 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로의 입에서 꺼내어졌다. 가끔 내가 모국어인 한국어로 말하는 게 아니라 더듬거리고 잘못 이야기할 때도 있었지만, 그 애는 성심껏 기다려 주었고 자신의 말을 풀어서 또 얘기해 줬다.
역에서 그 애를 봤을 때 긴장하긴 했지만, 예상외로 또 편안하고 설렜다. 서로 사소한 거에도 웃음을 터뜨리고 가벼운 스침들이 지나갔고, 그 날로만 아쉬웠는지 B는 그다음 날에도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날도 데이트는 나쁘지 않았다. 그전 데이트도 서로 헤어진 지 몇 시간이 좀 넘었을 뿐이었는데 B와 나는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B가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나서, B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 애는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