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항해로
이별을 인정하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사실 잠을 자도 잔 게 아니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정신은 시끄러웠으니까. 선잠이 든 상태로 숨을 내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번에는 사모아인을 만나겠구나.
일어나자마자 이게 뭔 뚱딴지같은 생각인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여러 외국인들이 관광 오는 서울이라고 하지만 뜬금없이 폴리네시아 사람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책상에 앉았을 때 문득 다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예전에 봤던 글이 스쳐 지나갔다.
GPS 나 지도 없이 항해를 했던 이들. 별들의 움직임이나 바다의 너울, 바람이 어떻게 부는 지만 보고 태평양을 항해하던 이들.
아마 그게 - 누군가와 만남이 가까워졌다는 것 일수도 있고, 혹은 무의식의 경계 중 떠오르는 날 것의 이미지 일 수도 있고. 구태여 누군가의 만남이라는 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지만 타이밍이 이상하게도 신기했다. B를 내려놓자마자 사모아인 이라니. 좀 기묘한 감각만을 가진채 한동안 생각에 빠졌다.
아주 예전, 몇 년 전 똑같이 선잠에 들었을 때 그때는 파도에 잠기는 꿈을 꾸었다. 서울 한복판, 작은 자취방에 파도가 밀려왔고, 귓가에는 파도소리가 들려 이게 실제인가 싶을 정도로 생생했다. 파도에 잠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밀려왔었다.
그러게, 그러고 보니 내 기원은 바다였지.
그냥 그렇게 결론을 내면서 결국에 사모아인은 - 그냥 이제는 바다를 등지고 사는 게 아닌, 지도 없이 해류를 읽고 별을 따라 항해하는 나를 이제야 만났다는 말이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게 B를 내려놓고 찾아온 결과라니, 그냥 가볍게 웃었다.
사람이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는 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B를 구원해주고 싶었다. 어딘가 갈 길을 모르고, 자신에게서도 끝없이 도망치던 그 모습이 내 모습과도 지독하게 닮아서. 도망을 치면서 겪었던 수많은 밤들과 밤에 물든 흰 천장들을 보면서 수없이 곱씹었던 외로움과 서러움이 뭔지를 알아서. 도망을 치는 게 맞지만 도망치고 난 뒤의 죄책감과 서러움은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 그때의 나는 누구에게도 괜찮아, 너 고생 많았지 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 너라도 그런 밤에서 조금은 덜 외롭길 바라서.
B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 애 에게 손 뻗고 싶었던 건 그 어릴 적 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