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책임감
엄마가 산딸기를 보냈다.
봄의 끝, 여름의 초입쯤에 잠시 짧게 나오는 과일인 산딸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스티로폼에 담긴 작은 박스 하나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해치울 정도로 - 어릴 적부터 새콤하고 달달한 빨간 작은 과육을 사발에 한 움큼 담아서 먹었다.
산딸기가 출하되는 시기가 너무나도 짧아서, 때때로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까먹다가도 가끔 무더운 여름의 기색이 보이면 아, 맞아 산딸기.라고 하면서 시장이나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아니면 시기를 놓쳐 못 먹은 적이 한두 번 정도 있었다.
이번에는 엄마가 먼저 물었다. 집 근처 시장에서 산딸기를 봤는데 너 생각이 나서, 두 박스 정도 고속버스 택배로 보내줄까?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물가가 오른 탓인지 과일 한 박스 치고는 좀 비싼 가격이라서 살까 말까를 고민하던 찰나여서.
그 주 토요일은 부산에 비가 퍼붓듯이 왔고, 일요일 아침 엄마는 시장에 겨우 남아있는 세 박스 중 두 박스를 사서 아이스팩에 넣은 뒤 고속버스 택배로 보냈다. 대략적인 도착시간을 듣고 시간에 맞춰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여름의 시작이라는 듯 날은 후덥지근하고 햇빛은 뜨거웠다.
생각보다 큰 아이스박스 - 가벼웠지만 부피가 커서 한 손으로만 들고 타기가 은근히 불편했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엄마가 내 생각해서 보내준 거니까, 감사하게 먹어야지. 라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택배 잘 받았다고, 들고 지금 지하철 타러 가는 길이라고.
아이스박스가 좀 큰데, 들고 가기 불편하지 않아?라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괜찮다고, 불편하긴 한데 못 들 정도는 아니야.라고 간단하게 답변했다.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긴, 너 어릴 때도 시장 가면 네 몫은 무거워도 네가 들고 다니더라.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기억하는 내 어릴 적의 모습에 그 순간만큼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엄마가 기억하는 그 모습의 나는 몇 살이었을까. 아마 엄마보다 작은 애가 비닐 봉지를 들고 엄마 곁을 걷는 모습을 생각하자 나도 조금은 웃었다.
어릴 때부터 내 몫은 내가 들고 다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산딸기 박스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는 애교 있는 딸은 아니라서, 전화가 끊긴 뒤에 나지막이 속으로 말했다. 제 몫은 제가 들고 다니던 어린애. 아마 자기 몫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 어린아이 특유의 소유욕도 있겠지만 - 그냥, 책임감 하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보고 자라서 닮지 않았을까.
그래도 엄마, 책임감 하나는 엄마를 닮았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