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인간이 도시를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도시가 인간을 만든다
건축학과에 들어와 근대적인 도시계획에 대해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은 르 꼬르비지에의 “빛나는 도시”이다. 밀도 높은 고층 건물들은 십자로 난 차도들과 맞닿아 있다. 직장과 거주지는 블록으로 완벽하게 구분되어 있다. 출퇴근 시간에 모여드는 많은 양의 차량을 감당하기 위해 중심 도로는 십육 차선 정도로 넓다. 그리고 미래의 건축가들은 차 중심의 도시설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도시”하면 하이웨이와 빨간 백라이트들이 발광하는 모습을 연상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인간이 철저하게 시스템에 의해 통제된다. 우연찮게도 이 책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가장 추앙받는 인물은 자동차 회사의 이름으로도 유명한 “포드(Ford의 설립자)”이다. 실제로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위해서는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입체적인 삶과 질적인 통계자료는 무시되고 간소화된 수치만이 중요시되며, 통제와 체계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빠른 교통을 위해 차도는 늘어났고, 더 많은 차도가 생길수록 더 많은 차량이 생겼다.
얀 겔은 이런 상황을 문제시한다. 보행자 도로와 좁은 골목은 점점 사라지고 통근시간은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이웃과 멀어져 고층 빌딩 숲 안에 고립되어 있다. 사람을 살찌우는 것은 타인과의 만남이라는데, 사람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잊었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는 인간의 삶을 왜곡시켰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없을까? 인간다운 건축의 개념은 무엇인가, 행복한 도시는 무엇인가?
얀 겔은 답은 인간 중심의 도시로의 회귀라고 본다. 더욱이 이 답은 경제적으로도 더 나은 방안이다. 도시 인구는 몇십 년 내에 폭발할 것이다. 그전까지 우리에게는 인프라를 구축할 시간도, 돈도 없다. 빠르게 도시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인간 중심적인 환경이다. 인간 중심적인 환경은 비용도 적게 들뿐더러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사람들은 건물에서 기억을 중요시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장소에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도시는 벽돌 덩어리가 아니라 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따뜻한 도시를 원한다. 찾아가서 즐길 수 있는 공간, 쉬거나 춤출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자전거 도로, 더 많은 공원, 쉴 수 있는 공간, 저층 건물을 원한다. 물론 기존의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 익숙한 사람들의 반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을 위한 공간이 늘어나면 시민들의 생활방식 역시 달라진다. 도시가 바뀌면 사람들의 욕망 역시 바뀐다.
얀 겔의 위대한 실험은 건축가의 임무를 되돌아보며 끝낸다. 건축가가 어떤 건물을 짓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척도가 달라진다. 건축가는 모든 상황과 장소를 통제할 수 없다. Master plan은 신이 되고 싶은 건축가의 허황된 욕망이다.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우리가 만든 공간으로 사람들을 산책할 수 있거나 앉아서 쉬도록 초대하는 일이다. 더 나은 일상으로의 초대, 그것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