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라는 공간의 의미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할 줄 아는 건 축구밖에 없던 고등학생의 나는 카페가 무서웠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축구를 하느라 카페를 갈 시간도 없었지만, 특별한 만남이 있어 카페를 가게 되는 날이면 잔뜩 긴장을 했다. 하루는 학원을 같이 다니던 여학생 친구가 카페를 데리고 갔는데 한국어로 적힌 영어 메뉴들을 보고 얼어붙은 적이 있다. 분명 한국어 같았지만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혀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반면 같이 간 친구는 두고두고 연습이라도 한 것인지 너무나 편하게 주문을 했다. 그 모습에 반해 친구가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따라 시켰다. 그렇게 처음엔 카페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지금은 텁텁한 주중을 부드럽게 넘기고 달콤한 주말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카페가 편안한 공간으로 변한 건 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다. 생명과학부에 입학한 내 주변에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는 없었다. 대신 대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은 술과 커피를 좋아했다. 매일 저녁에는 술집으로 다음날 점심에는 카페로 출근을 했다. 찐하게 술을 마시고 다음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로 해장을 하는 시간은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신입생 1년 동안 매일 같이 카페를 가다 보니 카페가 편안해졌다. 더 이상 무슨 메뉴를 시킬지 몰라 당황하지도 않았고, 기분이 꿀꿀한 날이면 시나몬이 올라간 카푸치노를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나는 카페에서 공부도 하고, 과제도 하기 시작했다. 집은 TV를 보거나 누워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었고, 도서관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야 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그래서 작업이 필요한 날이면 학교 근처에 카페를 찾아갔다. 유난히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큰 내게 카페보다 작업하기 좋은 공간은 없었다.
여수에서의 마지막 날. 오일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필름 카메라를 챙겼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방금 잡아 싱싱한 해산물을 사고파는 풍경을 볼 생각에 신이 났다. 교동 시장에 도착하니 신영 상회, 흥진 상사, 대양 상회 등 이름만 조금씩 다르고 디자인은 전부 똑같은 간판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신영 상회에서 팔고 있는 말린 멸치를 옆집 흥진 상사에서도 팔고 있었고, 그 옆집 대양 상회에서도 팔고 있었다. 나는 틀림 그림 찾기라도 하듯 다른 점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신기하게도 똑같은 간판을 걸어놓고 똑같은 상품을 팔아도 손님들이 모이는 가게는 따로 있었다. 그 가게 사장님은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지나가는 손님들을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안부를 물었다. 상품에 대해 궁금해하는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가득 찬 눈을 가지고 있었다.
교동 시장을 지나 서시장에 도착하니 본격적으로 오일장이 시작됐다. 실크로 된 남색 빵모자를 쓰고 트로트 테이프를 판매하는 아저씨. 트로트 테이프 가판대를 뒤적거리며 송가인 트로트 테이프는 왜 없냐고 소리치는 할아버지. 두꺼운 장갑을 두 손에 끼고, 기합을 넣으며 뻥튀기 기계를 힘차게 돌리는 아저씨. 장사를 하다가 잠시 멈추고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할머니들. 빨간색 모자, 빨간색 코트를 입고 대파가 담긴 카트를 끌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아주머니. 장을 보다가 우연히 만난 친구의 손을 잡고 헤어질 때까지 놓지 못하는 할머니들. 소소하지만 행복한 삶의 순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다 리어카에 김을 한가득 싣고 이동하는 할아버지를 따라 서시장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본인이 말린 김을 서시장에 있는 여러 가게에 도매로 판매하고 있었다. 우와, 멋지시다.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가려는데 '경아네 찻집'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마침 목이 마르기는 했지만 막상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일단 카페가 아니라 찻집은 처음이기도 했고, 주민도 아닌 여행객이 찻집에 가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찻집 유리창문을 너머로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보였다. 검은색 머리에 파마를 하고 있었고, 멀리서도 할머니의 미소에서 온화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유리창문에 붙여진 커피 스티커를 보고 호기심이 폭발했다. "찻집에서 마시는 커피는 무슨 맛일까?" 너무 궁금한 나머지 민폐인걸 아는데도 들어갔다. 문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여는데 드르르럭하는 요상한 소리가 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들이 나를 발견하자 이마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민망한 분위기를 살려보고자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인사를 했다. 사장님은 내게 앉을 곳을 안내해주고 무슨 음료를 주문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주문했고 사장님은 "프림?"이라는 질문을 했다. 프림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주방에서 가스레인지로 커피를 끓이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얼굴을 맞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찻집에 있는 식탁들은 일자로 나열되어 있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30초 정도 정적이 흐르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젊은 사람이 이런덴 왜 왔어?" 나는 솔직하게 커피 맛이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 순간 사장님이 커피를 가져다주셨다. 반지르르 광이 나는 찻잔에 담긴 커피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입으로 호~하고 바람을 불어 식힌 다음 커피를 홀짝 들이켰다. 찻집에서 처음 마시는 커피는 생각보다 심심했고 동시에 달았다. 텁텁하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 넘김이 좋아 고개를 끄덕이며 음~하고 소리를 냈다. 나를 보고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일자로 나열된 식탁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나도 모르게 시시한 여행에서 경험한 것들을 술술 말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서울로 여행 간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사실 잘 들어보면 서울에 사는 자녀분들에 대한 자랑이었다. 서울을 갈 때마다 자녀 분들이 너무 잘 챙겨줘서 미안할 정도라고 하셨다. 서울 지하철의 불편함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아드님이 새 차를 뽑고 데리러 왔다는 자랑으로 끝내신 할머니도 있었다. 찻잔을 들고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문에서 드르르럭하는 소리가 났다. 파란색 꽃무늬 잠바를 입은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어나서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처음 내게 질문을 해준 할아버지는 새로 온 할머니에게 나에 대해 열심히 소개를 해주셨다. 소개를 다 들은 할머니는 엄마 같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토닥토닥 만져주셨다. 할머니가 식탁에 앉아 사장님에게 주문을 할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대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주방에 가서 사장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계산을 하려고 하니 벌써 누군가 계산을 했다고 하셨다. 뒤를 돌아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날 챙겨줬던 할아버지가 윙크를 했다. 감사한 마음에 코 끝이 찡해졌지만 티 내지 않고 인사를 꾸벅하고 나왔다.
찻집과 카페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찻집은 손님들이 각자 볼일만 보고 가는 공간이 아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서울에는 골목마다 카페가 있을 정도로 많아졌지만 찻집처럼 만남의 공간의 역할을 하는 공간은 많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날이 갈수록 인테리어, 편리성, 맛 등 외형적인 가치는 늘어나지만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 간다. 언젠간 서울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소통, 대화, 관계의 가치를 담은 카페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