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주, 여수, 순천을 거쳐 완도에 도착하니 꽤나 피곤했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시시한 여행이라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은 없었지만, 근육에 피로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행을 오래 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행하는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선 제대로 쉬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완도에 도착하고 다음날까지 숙소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들던지, 로비 카페에서 사람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쉬었을까.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을 보면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걸을 때마다 땅바닥에 찍~찍~ 끌리는 소리가 나던 슬리퍼를 벗고, 끈이 단단하게 묶인 운동화를 신었다. 운동화의 무게는 슬리퍼의 무게보다 무거웠지만, 운동화의 발걸음은 슬리퍼의 발걸음보다 가벼웠다. 숙소 로비로 내려가 사장님에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 있는지 물었다. 사장님은 숙소 밖으로 나간다는 내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며 장도를 추천했다. 장도는 사장님이 고민이 생길 때 무작정 찾아가 산책을 하는 작은 섬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내가 고민이나 생각이 많아지면 자전거 타고 나가는 광나루 한강공원이 떠올랐다. 사장님에겐 장도가 나에겐 광나루 한강공원 같은 곳이구나. 장도가 궁금해졌다. 완도라는 작은 섬 안에 더 작은 장도는 어떤 모양일까? 장도에서 나는 무슨 시시한 경험을 하게 될까?
숙소에서 장도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택시를 부르기 위해 습관적으로 휴대폰 잠금장치를 풀고, 카카오 택시 앱을 실행했다. 늦게나마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완도에서도 카카오 택시를 부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숙소 주소를 입력하고 카카오 택시를 부르니 최대 5분 거리의 기사님에게 요청이 갔다. 그러나 1분이 지나도 심지어 5분이 지나고도 기사님은 응답이 없었다. 똑똑한 카카오 택시는 자동으로 최대 거리를 10분으로 변경하고, 다시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묵묵부답. 숙소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완도는 아직 카카오 택시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개인택시 기사님의 명함을 하나 꺼내 줬다. 명함은 흰색 바탕에 궁서체로 이름 석자가 크게 적혀있었는데 촌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신뢰가 느껴졌다. 전화가 연결되자 기사님은 "안녕하세요, 개인택시 기사 ㅇㅇㅇ입니다."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기사님의 목소리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는 방금 카카오 택시를 부르면서 받은 작은 상처들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만큼 따뜻했다. 장도를 가는 동안에도 기사님은 장도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주셨다. 나는 중간중간 사장님이 하시는 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반응이 아니라,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내다보니 관능적인 산 능선을 품고 있는 작은 섬 하나가 보였는데, 기사님은 그 섬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장도라고 말했다.
장도에서 숙소로 돌아갈 때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기사님과 약속을 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기사님은 숙소 사장님에게 받은 똑같은 명함을 주면서 천천히 둘러보라고 말했다. 택시가 떠난 자리 뒤로 구멍가게가 보였다. 마침 장도에 있는 작은 산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목을 축일만한 음료수가 필요한 참이었다. 그러나 돌담으로 둘러싸인 구멍가게는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아 음침한 기운이 돌았다. 콩알만 해진 간을 부여잡고 들어간 구멍가게에는 사람이 없었다. 식품들이 올라간 철장 진열대, 맥주 홍보물이 붙여진 냉장고, 숟가락과 젓가락이 굴러다니는 식탁과 의자가 전부였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입구 왼쪽에서 '드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돌아보니, 작은 창문으로 주인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나를 보고도 주인 할머니는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고, 무엇을 찾는지 퉁명스럽게 물어보셨다. 나는 스스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할머니의 지시에 따라 냉장고에서 포카리스웨트 하나를 들고 왔다. 주인 할머니에게 신용카드를 건네고 기다리고 있는데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보였다. 작은 좌식 식탁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가족들을 발견하곤 구멍가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식탁에 올라가 있는 반찬은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등 말 그대로 김치 천국이었다. 평소라면 나에게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버려졌을 반찬들이지만 나도 모르게 붉은색 김치 국물과 덕지덕지 붙어있던 고춧가루를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계산을 마치고 카드를 다시 돌려주신 주인 할머니는 무심하게 창문을 닫고 식사를 하러 가셨다. 나는 구멍가게를 나오면서 오늘 저녁은 기필코 따뜻한 멸치 국수에 큼직한 배추김치를 말아서 후루룩 마시겠다고 다짐했다.
완도에서 장도로 넘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둘 사이를 이어주는 나무판자 다리 위를 건너거나, 물이 빠지고 바다 사이로 나는 길을 건너는 것. 마침 완전히 물이 빠지고 나서 도착한 나는 자연이 만든 신기한 바닷길을 따라 걸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끈적한 뻘이 신발 밑창을 잡고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반대편 바닷길 위에는 허리를 반으로 접어 몸을 수그리고 있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뾰족한 호미를 한 손에 들고 몇 번이고 땅을 파다가, 무엇인가 잡히면 반대편 손으로 잡아 바구니에 넣었다. 오늘 저녁으로 먹을 해산물을 모두 잡은 건지 통통하게 채워진 망을 가득 담고 육지로 나가는 할머니도 보였다.
신비한 바닷길을 건너 장도에 도착하니 정상에 오르는 산책로가 보였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장엄한 성문을 거쳐 정상에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산책로 대신 능선을 선택했다. 장도의 능선은 워터파크의 미끄럼틀만큼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양팔을 벌려 중심을 잡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 두 걸음 올라갔다. 능선 위에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말라비틀어진 지푸라기가 밟혀 샥~샥~하는 시원한 소리가 났다. 그 시원한 소리를 더 크게 듣고 싶어 발을 힘차게 들어 올리다 보니 어느새 뛰어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 넘어진다고 해도 아프지 않을 만큼 푹신한 능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다 보니 얌전하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지푸라기를 잡고 앉아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 다음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맑은 공기가 들어오니 그제야 몸이 차분해졌다. 눈을 뜨고 올라온 능선을 돌아보니 한 아이가 신이 나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입구에서 장도 설명문을 읽고 있는데 우연히 눈이 마주쳐 인사를 나눈 아이다. 내가 올라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나를 따라 양팔을 벌리고 능선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파른 능선에서 받는 중력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덩치가 크지 않았던 그 아이는 중간에 어김없이 넘어졌다. 넘어진 아이는 오른손을 올려 ㄱ자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있었다. 도와주러 내려가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다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려고 하는 순간 까르르~ 하는 다른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친구가 넘어진 것을 보고 뒤에서 천천히 올라오던 아이가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넘어진 친구는 얼마나 놀림을 당하려나. 괜히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드네."하고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두 아이들은 내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행동을 했고, 나는 그 행동을 보고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뒤늦게 도착한 친구는 고민도 하지 않고 넘어진 친구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너 뭐하냐?" 그러자 넘어진 친구가 "아, 몰라! 넘어졌다. 키키킼."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둘은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고 그저 하늘이 떠나가라 소리 내서 웃었다. 그들은 한참을 웃다가 부모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그리고 엉덩이에 붙은 지푸라기를 서로 털어주고 올라온 능선을 따라 뛰어 내려갔다. 순수한 마음을 지키고 있는 아이들이 떠나고도 여운이 남아 한 시간을 넘게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장도 정상에 누워있으니 다양한 새소리가 들렸다. 조잘조잘 노래를 하는 참새도 있었고, 심술을 부리면서 꽥꽥 울어대는 오리도 있었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머리가 맑아졌고 고마운 친구들이 생각났다. 표현은 안 해도 항상 옆에서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들. 오랜만에 연락을 하거나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갑게 받아주는 친구들. 사소한 고민도 언제나 진심으로 들어주는 친구들.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큰 친구들에게 오늘은 내가 먼저 전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이 아니면 장도에서 만난 두 아이들 이야기를 해줄 수 없을 테니까. 오늘이 아니면 그동안 내가 넘어질 때마다 옆에 나란히 누워 같은 하늘을 바라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줄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