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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Aug 23. 2020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숙소 가는 버스를 타고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내렸다. 오후에 다녀간 소나기 때문에 날씨는 제법 쌀쌀해졌지만, 폭신폭신한 모래사장을 산책하고 싶은 내 마음까지 차갑게 만들진 못했다. 마침 해운대에서는 따뜻한 조명들이 차가운 겨울 저녁을 밝혀주는 '빛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푸른색 조명들이 모래사장을 넓게 수놓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파란색 유채꽃밭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파란색 유채꽃밭을 사이로 들어가니 달빛 조명들이 보였다. 달빛 조명은 사람들이 손가락을 톡- 하고 갖다 댈 때마다 다른색으로 변했다. 달빛 조명은 보라색에서 초록색으로, 분홍색에서 파란색으로, 노란색에서 다시 보라색으로 변했다. 하늘색이 파란색이 아닌 것처럼 달빛도 노란색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조금 더 들어가 보니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은하게 붉은빛이 도는 선물 박스들은 귀여운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조명에 비춰 얼굴이 빨개진 사람들은 선물 박스를 가리키면서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토론을 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부모님을 따라 나온 아이들도 있었다. 오늘만큼은 저녁 9시에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빛축제를 열렬하게 즐기고 있었다. 군중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뛰어다니는 아이들 입에서는 깔깔깔깔 까마귀 소리와 꺄르르르 돌고래 소리가 동시에 났다. 그러다 조명이 달린 풍선을 들고 뛰어다니던 아이가 사진을 찍고 서 있던 나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풍선은 줄이 풀려 하늘로 날아가버렸고, 아이는 울면서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빛축제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아이가 엄마를 모시고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빛축제에서 나와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순간 범죄 현장에서 도망친 사람처럼 긴장을 했다. "혹시, 경찰인가?" "나, 진짜 잘못한 거 없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인욱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인욱이는 고등학교 3학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다. 고등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인욱이와 이만큼 친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입학식 날 나는 맨 뒤에 앉았고, 인욱이는 맨 앞에 앉았다. 당시 나는 머리가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관심을 피할 수 있는 맨 뒤에 앉아 수업도 듣지 않고 잠만 잤다. 고등학교 시험도 벼락치기만 하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반면 인욱이는 맨 앞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모든 수업에 열심히 임했다. 인욱이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적었다. 심지어 선생님이 농담으로 하는 말까지도 모두 필기하는 친구가 바로 인욱이었다. 나는 그런 인욱이를 보고 있으면 답답했다. "무슨 공부를 저렇게 멍청하게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 정작 멍청한 사람은 인욱이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학교 시절부터 갈고닦아 온 벼락치기 기술로 간신히 평균 90점을 넘김 나와 달리, 인욱이는 평균 99.5점으로 전교 1등을 차지했다. 선생님들이 말하길 인욱이는 모든 시험에서 2문제를 틀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인욱이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홍하사라는 별명이 있었다. 군대에서 막 전역한 사람처럼 말투나 행동에 군기가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2학년 개학식 날, 담임 선생님은 낡은 슬리퍼를 끌고 들어와서 다짜고짜 칠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이하게 생긴 도형에서 밑변의 길이를 구하는 수학 문제였다. 담임 선생님은 이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 상의 주인공은 인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십 분이 지나도 인욱이는 손을 들지 않았다. 홍하사로 변신한 담임 선생님은 왼쪽 열에 앉은 친구부터 문제를 풀어보라고 명령했다. 풀다가 정답이 틀린 친구들은 싸대기를 맞았고, 모른다고 대답한 친구들은 양싸대기를 맞았다. 그러다 내 차례까지 왔다. 개학식 첫날부터 싸대기를 맞고 싶지 않았던 나는, 18년 인생을 통해 배운 모든 교훈을 활용해 밑변을 구해냈다. 담임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풀이 과정이 이상하지만 답은 맞았다면서 큰 상으로 양싸대기를 더블로 날렸다. 그리고 오늘부터 인욱이 옆에 앉아서 공부를 배우라고 손수 자리를 옮겨주셨다.


인욱이는 새하얀 얼굴에 여드름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에는 반달 모양 눈을 하고 있다가 웃으면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오뚝한 코는 빛을 받으면 삼각형 모양으로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콧구멍은 너무 작아서 십 원짜리 동전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시 내 콧구멍은 오백 원짜리 동전이 들어갈 정도로 컸다.) 무엇보다 인욱이는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아저씨처럼 수염이 났는데, 면도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게는 그게 참 신기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인욱이는 짝꿍이 된 인욱이와 많이 달랐다. 멀리서 지켜보던 인욱이가 범생이라고 한다면, 짝꿍이 된 인욱이는 놀 줄 아는 놈이었다. 공부를 잘하니까 당연히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인욱이는 진지하면서도 위트가 있었다. 내가 하는 농담을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인욱이는 교제하고 있는 여자 친구도 있었다. 인욱이의 여자 친구는 우리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인욱이는 틈만 나면 지갑에 있는 여자 친구 증명사진을 꺼내봤다. 인욱이랑 친해지고 나서보니 우리는 좋아하는 게 비슷했다. 인욱이는 슈팅을 발등이 아니라 코발로 해서 정확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나만큼 축구를 잘했다. 우리는 항상 체육시간에 실내화를 신고 나가 투톱으로 콤비를 맞췄다. 그리고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담임 선생님 몰래 나와 노래방에서 종종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노래방에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대형마트 시식 코너에서 배를 채우고 학교로 돌아오면 다시 공부할 기운이 났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인욱이는 원하는 대학을 골라서 갈 수 있었지만, 반 10등으로 성적이 떨어진 나는 원하는 대학을 함부로 언급할 수도 없었다. 인욱이만큼 좋은 대학은 아니어도 부모님이 알고 있는 대학에는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논술 전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내신 성적을 1점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서 중간고사를 준비할 때, 수능을 위해 모의고사 기출문제집을 풀 때. 나는 원하는 대학에서 10년간 출제됐던 논술 문제들을 모조리 수집하고 분석했다. 모든 문제에 대한 모범 답안을 직접 만들고,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마음 같아선 모든 논술 문제 유형을 달달달 외우고 싶었다. 그런 나를 보고 선생님들은 미친놈이라고 했다. 정원이 5명도 안 되는 논술 전형에 목숨 걸지 말라고, 차라리 지금부터 정시를 준비하라고 나를 뜯어말렸다. 그럼에도 인욱이는 내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줬다. "참, 너다운 선택이네. 난 너 논술 전형으로 합격할 것 같은데?"라고 말해줬던 인욱이의 말 한마디가 나에겐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친구들이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10월 어느 날, 내가 논술 전형으로 지원했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고등학교로 날아왔다. 그날 학교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를 무시했던 선생님들에게 서운해서, 나를 믿어줬던 인욱이에게 고마워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한 달 뒤, 수능이 끝나고 인욱이도 보란 듯이 서울  명문대에 합격했다. 그날 우리는 노래방에서 놀다가 대형마트 옆에 있는 피자헛에서 축하 파티를 했다.


우리는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도 자주 연락을 했다. 누구 하나라도 좋은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안양에서 만났다. 수원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나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인욱이의 중간이 안양이었다. 안양에서는 3만원만 있으면 돈 걱정 없이 술을 마실 수 있어 좋았다. 문제는 우리 둘 다 술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물처럼 들이켰다. 안양에서 둘이 술을 마시는 날이면, 둘 중 하나는 개가 됐다. 그렇게 서로를 개자식이라고 놀리면서 챙겨주던 우리의 청춘을 인욱인 아직도 기억할까?


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 건 내가 휴학을 하고 런던으로 떠나고 나서부터다. 혼자서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없었고, 인욱이와도 연락이 뜸해져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2년 동안 런던에서 목표한 경험들을 모두 이루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인욱이는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인욱이는 서울 명문대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했고, 성실하게 번 돈으로 벌써 집을 한 채 샀다고 했다. 반면 나는 런던에서 방금 돌아와 이제 취업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루는 회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생각이 났다는 인욱이에게 전화가 왔다. 인욱이는 친구로서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다. 순수한 마음에 나를 위해서 진심으로 해준 말이지만, 듣고 있는 내내 참 마음이 아팠다.


그 통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인욱이에게 전화가 오니 당황스러웠다.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아니라, 받고는 싶은데 무슨 말을 할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전화를 받으니 자동차 엔진 소리만 들렸다.


김피플/ 인욱 : "..."

김피플 : 인욱아, 오랜만이다.

인욱 : 응, 잘 지내?

김피플 : 나 지금 부산이야

인욱 : 부산엔 왜?

김피플 : 국내 여행하고 있어

인욱 : 회사는 어떡하고?

김피플 : 휴가 내고 왔지

인욱 : 여행하면서 글도 쓰고 있고?

김피플 : 응, 알면서 뭘.

인욱 : 이번에는 무슨 컨셉인데?

김피플 : 혼자서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 책 제목도 벌써 "시시한 여행"으로 정했어.

인욱 : 뭐야, 또 너 같은 컨셉 골랐네.

김피플 : 그러게, 너는 또 회식하고 들어가는 거야?

인욱 : 응, 잠깐만. 집에 들어가서 다시 전화할게.
인욱 : 응, 피플아 잠깐만. 내가 집에 들어가서 다시 전화할게.


끼익-하는 택시 멈추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끊겼다. 전화를 주머니에 집어 놓고 보니 숙소가 보였다. 벌써 시간도 새벽 1시가 넘어 꽤나 피곤했지만 발걸음을 돌려 다시 해운대로 갔다. 더 이상 할 말도 없지만 인욱이에게 전화가 다시 오길 바랬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위이이잉- 위이이잉-' 휴대폰에서 진동이 다시 울렸다.


인욱 : 피플아, 미안. 오래 기다렸지?

피플 : 아니야. 해운대 산책하고 있었어.

인욱 : ...

피플 : 야, 괜찮다니까. 왜 그래!

인욱 : 아니, 그게 아니라.

피플 : 뭐야? 왜 갑자기 분위기를 잡아.

인욱 : 피플이 너한테 그런 말 하려던 건 아니었어.

피플 : 무슨 말하는 거야.

인욱 : 내가 취해서 너한테 전화한 날 있잖아.

피플 : 아, 난 또 뭐라고. 됐어, 괜찮아.

인욱 : 너 한국에 왔다는 소식 듣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더라고.

인욱 : 내가 취해서 그런 것도 있는데... 내가 사회생활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너한테 알려주고 싶었나 봐.   

피플 : 나도 알지, 우리가 어떤 사인데. 내가 그걸 모르겠어.

인욱 :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 해주고 싶었어. 좀 늦었지만, 미안해.

피플 : ...

인욱 : 아, 그리고. 시시한 여행 출판되면 꼭 알려줘. 회사 사람들한테 홍보해줄게.

피플 : 휴.. 고맙다.. 인욱아..

인욱 : 내가 할 수 없는 건 해줄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줘야지.

피플 : ...

인욱 : 나 이제 내일 출근해야 돼서 이만 끊을게. 여행 잘해.


인욱이는 항상 그랬다. 표현은 서툴러도 내가 하는 선택과 행동을 뒤에서 응원해줬다. 반대로 생각해보니 내가 인욱이의 선택과 행동을 응원해준 적은 없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인욱이를 보고 멍청하다고 했고, 성실하게 일하는 인욱이를 보고 낭만이 없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인욱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왜 이렇게 용기가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답답한 마음에 파도치는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숙소로 돌아가는데 시시한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에 누워 오늘 밤은 꿈에서라도 밤새도록 인욱이와 소주를 마시고 싶다고 기도를 하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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