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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Oct 04. 2020

놓치고 있던 풍경들


 부산에서 떠나 어디로 가면 좋을까? 식사를 마치고 무작정 큰길로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버스가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신해운대역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어린이집 통근 버스처럼 생긴 마을버스가 왔다.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도록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갔다. 마을버스에는 운전기사 아저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버스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으니 아침 내내 정신없던 마음이 금방 차분해졌다. 종점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버스에서 내렸다. '신'해운대역이라는 이름처럼 입구부터 건물 외벽까지 모두 유리로 지어져 있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화장실이 깔끔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당장 내게 급한 일은 화장실이 아니라 다음 행선지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매표소로 향했다. "다음에 들어오는 기차는 어디로 가나요?"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 시간 뒤 경주로 가는 기차가 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는 굉장히 지루했다. 그래서 더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경주가 지루할지, 경주가 지금의 내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경주행 기차표를 사고 역 안을 둘러보니 고객대기실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추운 날씨를 피해 기차를 기다릴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고객대기실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TV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일렬로 줄지어 앉아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교양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간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부부도 있었다. 배낭의 크기를 보니 제법 긴 여행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식탁 대신 의자 위에, 접시 대신 은박지 위에 올려진 식사는 다름 아닌 김밥이다. 젓가락도 없이 손가락으로 김밥을 집어 먹고 있었지만, 부부의 표정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사랑스러운 부부 옆에는 엄마한테 혼나고 있는 아이들도 보였다. 고객대기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술래잡기를 했던 것 같다. 잔뜩 풀이 죽은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동화책 읽어줄 테니까 조용히 듣기만 해, 알았지~?" 라는 말에 아이들은 엄마의 팔, 다리, 허리를 감싸 안고 다시 꺄르르 웃기 시작했다. 구석에는 나처럼 혼자인 사람들도 있었다. 일행 없이 오롯이 혼자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음식을 먹지 않았고, 소음을 내지 않았고, 특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음 여행을 위해 그들은 그저 귀에 이어폰 하나만 꽂아두고 가만히 앉아 체력을 충전하고 있었다.


 경주행 기차가 도착했다는 안내가 들렸다. 고객대기실에서 나와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경주행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아 숙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비용 대비 시설이 좋은 곳도 있었고, 숙박객들을 위한 파티를 열어주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집들 사이로 울룩불룩 솟아오른 고분을 볼 수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3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6명이 같이 자야 하고, 저녁 10시에 소등을 해서 조용히 잠만 자야 하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숙소를 찾는 동안 기차는 울산을 거쳐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역은 신해운대역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기와지붕은 가로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고, 벽면에는 궁궐 담장을 연상시키는 무늬들이 그려져 있었다. 나름의 방식대로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경주역은 외국 사람들이 줄을 지어 인증 사진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숙소가 주택가 있어 버스에서 내리고도 한참을 걸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정말 고분들이 보였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볼록하게 솟은 고분들이 신기했다. 하지만, 숙소 옆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운동장에는 5명의 초등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1명은 골키퍼를 보고, 2명씩 한 팀을 만들어 반코트로 시합을 했다. 골키퍼를 보고 있는 학생은 의욕이 없었다. 골을 먹고 싶은 사람처럼 빈둥거렸다. 반면 나머지 학생들은 월드컵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선수들처럼 열심히 했다. 그러다 누가 조금이라도 반칙을 하면 서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싸웠다. 20년 전에 내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모습과 너무 비슷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잠시 잊고 지냈지만 익숙한 풍경들이 보였다. 원숭이처럼 손으로 철봉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서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구름사다리, 누군지는 모르지만 위엄이 느껴지는 동상들, 바람에 펄럭거리는 태극기가 달린 국기 게양대, 체육시간이 끝나고 종이 울리면 달려가서 벌컥벌컥 물을 마시던 식수대까지.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가득했다. 고분에는 이름 모를 위인의 삶이 묻혀 있다고 하지만 초등학교에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묻혀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로 자꾸만 눈이 갔다.



 숙소로 들어가 방에 짐을 풀었다. 1층이라 창문에는 창살이 설치되어 있었고, 천장이 낮아 2층 침대 위에는 앉을 수도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면 조금 쉬려고 했지만 너무 좁고 답답해서 바로 나왔다. 로비에서 사장님에게 근처 관광지에 대해 물어보니 경주 오릉을 추천했다. 경주 오릉은 고풍스러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신라 초기의 왕릉인데, 30분이면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 했다. 필름 카메라를 목에 매고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숙소 옆에 있던 초등학교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고분들도 다시 보니 제법 멋스러웠다. 고분들은 웬만한 집들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우람한 덩치를 자랑했다. 동시에 잔디가 촘촘하게 심어진 고분의 표면은 탄력 있고 부드러웠다. 고분 위로 힘차게 뛰어 올라가, 손과 발을 일자로 쭉 뻗고 누워 굴러 내려오는 상상을 했다. 나 같은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고분 곳곳에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표지말이 가득했다. 다시 경주 오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이 없는 텅 빈 공사장 하나를 발견했다. 낡은 집을 허물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공사장에 설치된 철골구조물과 나무판자 그리고 각종 집기들이 일정한 규칙을 보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디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뭐 찍어요?" 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관광객이고, 공사장 현장이 멋져 보여서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제야 아저씨는 험악한 표정을 풀고 "별걸 다 찍는구먼."하고 말했다. 머쓱해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걸으니 경주 오릉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 동네에 도착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한옥들이 있었다. 담을 만든 벽돌의 재질, 지붕 위에 올라간 기와의 종류, 대문에 달린 손잡이 등 한옥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도 관찰할 수 있었다. 낡은 한옥들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동네를 한 바퀴 둘러봤다.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심하게 구부러진 핸들, 동그란 쇠로 만들어진 브레이크, 격자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철판 뒷 안장 그리고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내가 보성에서 지낼 때 할아버지가 타던 자전거랑 똑같은 모델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내 앞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나를 보고 정말로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사진을 그렇게 찍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찍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진 않았다. 오늘 처음 만난 할아버지가 괜한 마음 쓰지 않길 바랬다. 그래서 전주다운 시골길에서 자전거 탄 할아버지가 멋져서 찍었다고 대충 둘러댔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별걸 다 찍는구먼."하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노인들만 사는 경주 시골 동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가 궁금했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할아버지는 특별히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퉁명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주도했다. 평소라면 귀찮다고 생각했을 사소한 질문들은 오늘은 왜 그렇게 신나게 대답했을까.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와 즐거운 대화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감나무를 발견했다. 감나무에는 마지막 하나 남은 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감을 차지하기 위해 새들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누구 하나 용기를 내서 감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데, 대장으로 보이는 큰 새가 날아와 감을 먹기 시작했다. 조그만 부리로 감의 1/3을 먹고 나서야 배가 불러온 큰 새는 미련 없이 떠나갔다. 그 순간, 큰 새가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새들이 모조리 감으로 달려들었다. 새들은 날개와 다리를 이용해 다른 새들을 감에서 떨쳐 내기 위해 싸웠다. 새들이 싸우면서 짹짹이 아니라 뻑뻑하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는 분노와 위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참의 싸움 끝에 승자가 나타났다. 대장만큼은 아니지만 덩치가 꽤나 크고, 두 마리가 한 팀으로 움직여 감을 차지한 새들이다. 그렇게 식사와 싸움이 반복되면서 감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통통하던 감은 껍질만 남아서 달랑거렸다. 그제야 숨어있던 작은 새들이 껍질만 남은 감을 맛보기 위해 날아왔다. 하나 남은 감이 껍질까지 모두 사라지고 나니 새들은 다시 새로운 감을 찾아 날아가버렸다. 마치 하나의 목표를 두고 여러 사람이 경쟁하는 사회를 그리는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숙소를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경주 오릉에 도착했다. 사장님이 말한 예상시간에 6배가 걸렸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니 붉은 노을이 지고 있고, 담 너머로 보이는 경주 오릉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매표소로 달려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했다. 비록 경주 오릉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경주 오릉으로 오는 길에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풍경들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경주 오릉만 생각하고 빨리 도착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오늘 필름 카메라에 담은 사소한 풍경들을 모두 놓쳤을지도 모른다. "별걸 다 찍는구먼."하고 말하던 공사장 아저씨와 자전거 탄 할아버지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숙소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30분 아니 3시간은 더 걸어야 하는데 발걸음은 총총하고 가벼웠다. 왠지 모를 설렘이 느껴졌다.


이번엔 무슨 재미있는 풍경을 발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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