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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Sep 19. 2020

정성이 담긴 식사의 힘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발로 차고 자던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렸다. 5분이라도 더 자보겠다는 나를 향해 숙소 직원은 나지막이 말했다. "퇴실 시간입니다." 흔들림 없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오늘이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몽유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머리는 바다에 나가서 태풍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올라가 있을까? 매일 아침마다 보는 내 머리지만 항상 신기하다. 화장실에는 내 머리가 반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작은 세면대가 있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세면대에 고개를 박고 목을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머리를 감았다. 샴푸가 눈에 들어갈까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내가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눈꺼풀 위로 선명하게 그려져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화장실에서 긴 사투를 벌이고 나오니 직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고요해진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직원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도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로비로 나가니 그 직원이 앉아 있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머쓱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니, 직원은 활짝 웃으며 퇴실하기 전에 옥상에 꼭 가보라고 답했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숙소 옥상은 포근했다. 야외 테라스에 짐을 풀고 앉으니, 바닥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은은한 그림자를 보고 있으니 눈이 편안해졌다. 옥상에 있는 작은 담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햇빛이 알아이 박힌 파도들은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고, 갈매기는 출렁이는 파도 위를 아슬아슬하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깔깔깔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방파제가 보였다. 뿔이 달린 돌덩어리를 여러 개 쌓아서 만든 방파제였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 때문에 사람들이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방파제 뒤로는 작은 부두가 있었다. 배들은 서로의 간격을 정확하게 유지하면서,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정박해 있었다. 평평한 아스팔트도 아니고 파도치는 바다에서 말이다. 마음속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맞나?" "무슨 정박 장치 같은 게 있겠지..." 라는 의심을 하던 찰나. 보란 듯이 빨간색 지붕이 달린 배가 부두로 들어왔다. 후진 아니 브레이크도 하지 않고 단번에 정박하는 모습을 보고 선장님들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배가 정박을 하면서 바다 위에 그리는 부드러운 곡선도 너무 아름다웠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한 동안 다시 볼 수 없을 부산스러운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한참을 옥상에 앉아 있었다.


옥상에서 내려와 숙소를 나왔다. 부산을 떠나 어디로 갈지도 정하지 않았지만 별로 걱정하진 않았다. 어차피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에 도착하면 어디로든 새로 출발하게 될 테니까. 당장 내게 중요한 건 점심이었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기 전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블로그나 인스타에서 맛집을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내 경험상으론 그런 식당들은 입이 아니라 눈이 즐거운 경우가 많았다. 오늘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시는 사장님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부산 시내가 아니라 숙소 주위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짐이 가득 담긴 캐리어 바퀴에 돌멩이가 걸려 '달달달달'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꼭 내가 부산 여행 왔다고 광고하는 사람 같았고, 동네 사람들도 정말 나를 그렇게 보는 눈치였다. 그러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우리집 밥상' 라고 적힌 정겨운 간판은 내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식당에서 된장국을 끓이고 있는지, 구수한 냄새가 골목길에서도 진동을 했다. 식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내 입에서는 끝도 없이 군침이 돌았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장부를 들고 있던 사장님이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답하니 사장님의 콧바람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식당 주위에 건설 현장들이 많아 소속 회사 이름을 장부에 올리고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장님은 서울 소속의 관광객 신분인 내게 식당 시스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일단 식당은 스스로 먹을 만큼만 음식을 덜어가는 한정식 뷔페고, 대충 둘러보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 된다고 했다. 한창 점심시간이라 식당에 빈자리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금방 식사를 하고 일어나서 5분 정도 기다리니 내가 원하는 구석진 곳에 자리가 생겼다. 식탁 아래 짐을 내려두고 음식을 가지러 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흰쌀밥, 춘장 냄새가 진하게 퍼지는 짜장, 군침을 무한대로 만들어낸 된장국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도 알타리 김치, 소시지 볶음, 시금치 무침 등 우리집 밥상의 오늘 점심 메뉴는 맛과 영양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을 식판 위에 가지런히 담아 자리로 돌아갔다. 드디어, 짜장이 버무려진 흰쌀밥에 김치를 얹어 한 입 먹으려는 순간.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보니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식판만 들고 서 있었다. 나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일단 들었던 숟가락을 입으로 넣지도 못하고 식탁 위에 그대로 내렸다.


순식간에 활기가 넘치던 공간에 삭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식당에 단체로 사람들이 몰려와 밥이 부족한 상황 같았다.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 사장님은 고개를 숙이며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밥이 나오지 않았다. 식판을 들고 밥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갈수록 안 좋아졌다. 그러다 줄 맨 앞에서 식판을 흔들며 씩씩거리던 아저씨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밥은 언제 나오는 거야?" 그 순간 식당에 있던 사람 중 절반은 아저씨를 쳐다봤고, 절반은 사장님을 쳐다봤다. 마침, 주방에서 부랴부랴 밥통을 들고 나오는 직원을 발견한 사장님은 "지금 나왔잖아요. 지금!"라고 받아쳤다. 시트콤 같은 상황에 식당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졌고, 머쓱해진 아저씨는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면서 음식을 담아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앉아 있는 기다란 식탁 옆에는 소주를 물처럼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ㅁㅁ건설' 라고 적힌 조끼를 똑같이 입고 있는 걸 보니 동료들끼리 점심에 반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중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 5명이서 소주를 각 1병씩 먹고 나서야 기분 좋게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나갔다. 반대편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꽃무늬, 체크무늬, 민무늬 등 저마다 개성 있는 두건을 쓰고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입꼬리가 씰룩 쌜룩 움직이는 걸 보니 남편 욕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 할아버지도 보였다. 식판만 바라보고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젊은 청년들이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와 같이 식사를 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젊은 청년들은 할아버지 주위에 앉았다. 식당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 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성이 담긴 식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주고 있는 걸까. 문득 엄마가 반찬을 서울로 가져다준 날이 떠올랐다.


최근에 슬럼프 때문에 잠시 주춤한 적이 있다. 회사를 나가기도 싫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집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우울했다. 올림픽공원을 심장이 터지도록 달려도 보고, 북한산 정상에 올라가서 소리도 질러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엄마한테 문자가 한 통 왔다. "아들, 뭐 먹고 싶어?" 그 문자를 보고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답장을 보냈다. "동그랑땡! 오이무침!! 오징어채!!! 떡갈비!!!!" 오랜만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다음날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들, 반찬 냉장고에 넣어놨어. 맛있게 먹어!" 집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내가 말한 반찬들이 있었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반찬으로 저녁을 먹는데 눈물이 났다. "힘내!" "잘 될 거야."라는 말보다 더 큰 위로와 응원이 느껴졌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그날 이후로 따뜻한 말보다 따뜻한 식사가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그래서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오늘 식사 한 끼는 제대로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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