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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선 Mar 09. 2023

설태호 장로님이 소천하셨습니다.

내 일상에로의 초대 (2023.1.28)

숭덕학사라는 곳이 있습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있는데 일제시대 박영출 목사님이 동경에서 한국 유학생들을 아무 것도 없는데 모아서 밥을 해주고 대학을 다니게 하시면서 시작한 놀라운 하나님의 집이죠.


김준엽, 강원룡, 장준하 등 여러 인재들이 그 당시 학사생들이었습니다.해방 후 남산 밑에 다시 시작하신 학사는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그 유지를 이은 아들 박창근 장로님이 자신이 직장생활하여 번 돈을 모두 거기 쓰시면서 저 같이 시골서 상경한 가난한 아들들에게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십니다.


저는 70년대 말 대학에 가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잘못하면 잡혀가서 어디서 죽었는지 부모님도 알지못하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까봐 두려워 하던 중 이 학사 문을 두드렸습니다. 예수도 믿지 않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유없이 배척하면서 살던 시기였는데...


면접을 하던 날 이사장이시던 아버지 연세의 박장로님이 하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제가 저는 믿지 않는 사람인데 이곳에 오면 예수를 믿어야 하느냐고 여쭤보니, 장로님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우리는 이곳에 자네 같은 사람들이 와서 예수 믿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기만 해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지금도 제가 말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질문에 홀로 부끄러워 합니다. 학사에 도움을 받으러 간 주제에 그런 질문을 하다니, 참 어리석죠. ㅠㅠㅠ 그런데 장로님은 그렇게 겸손히 말씀해 주시고 정말로 학사에도 부담이 될 운동권 학생인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학사에서는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하고 주일예배를  참석하는게 입사 조건이었습니다. 믿지 않던 저도 거기서 살면서 예수를 참으로 믿는 이들이 조건없이 남들을 사랑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연이 있지만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그렇게 신앙을 시작해서 벌써 4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숭덕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저를 지도하신, 아니 함께 살아주셨던, 사랑하는 장로님 중 한 분인 설태호 장로님이 사흘 전 소천하셔서 오늘 장례식을 마치고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셨습니다.


마음에 아련한 슬픔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면서 가졌던 그 슬픔이 오늘 장로님을 보내드리면서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와서 일산에서 서울 숭덕교회를 다니던 때 장로님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시며 권사님과 함께 늘 기뻐하셨습니다. 장로님은 월남전 참전용사이시기도 하고 젊은 날에는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근무하셔서 정년을 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홀트 아동복지회 이사장으로 재직하시며 사회사업하는데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늘 인자한 웃음으로 절 맞이하시고 교우들을 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제가 교회를 십오년여 전에 일산으로 옮긴 후 자주 뵙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날 숭덕교회 교우로부터 장로님이 편찮으시다는 말씀을 들었기에 전화를 드리고 떠나시기 한달 여 전에 뵈웠습니다. 그때 찾아뵙지 못했으면 영 후회가 될 뻔 했습니다. 한 시간도 안되게 였지만 그래도 뵙고 하시는 복지회 말씀을 듣고 또 장차 일을 생각하시는 바를 들었는데 하나님 앞에 가실 것을 잘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달포 후 불현듯 부고를 받았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일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말을 잃고 빈소에 갔었습니다. 사람의 일이 늘 그러하듯 이런 때는 아무 것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권사님 손을 잡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환히 웃으신 영정사진을 보며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돌아와서 다시 그 다음날 입관예배를 같이 가서 드리고 오늘 현충원 안장에는 가지 못했는데 제가 숭덕학사 있을 때 막내였던 박병록 장로님이 잘 보내드렸노라고 사진을 몇 장 보내왔네요.


책을 읽다가 내려놓고 또 먹먹해졌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아지겠죠.


그래도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장로님을 천국에서 영접하셔서 기쁜 천국잔치로 이끌어 가실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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