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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선 Apr 24. 2023

소동파의 ‘적벽부’와 경제학

데일리 임팩트 <세상 돌아보기> 칼럼(2022.04.11)

북송의 대문호 소식(蘇軾, 1037~1101)은 소동파(蘇東坡)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시(詩)·사(詞)·부(賦)· 산문(散文)에 모두 능해서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로 불린다. ‘적벽부’는 그가 황저우(黃州)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1082년 7월과 10월 ‘적벽’ 아래서 친구와 뱃놀이를 한 기행문들로 전(前)·후(後) 적벽부가 있다.


이렇게 소동파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적벽부가 경제학의 핵심 개념들을 명백히 보여주어서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경제학의 출발점으로 봐도, 그보다 700여 년 전 살았던 소동파가 이 개념들을 명백하게 이해했다는 게 놀랍다. 이 개념들은 전적벽부 거의 마지막에서 발견할 수 있다.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또한 무릇 천지 간, 사물에는 각각 주인이 있도다.)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진실로 내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도 취하면 안 되지만)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더불어 산간의 밝은 달은)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빛이 되어) 取之無禁 用之不竭(취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써도 다함이 없도다.)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이는 조물주의 무진장이어서, 내가 그대와 더불어 누릴 바로다.)


이 시구는 경제학의 핵심인 재화에 대한 구분이 담겨 있다. 물건에는 주인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이 가진 대부분의 사물이 사적재(private goods)임을 의미한다. 사적재는 다른 사람이 소유·사용할 수 없다. 경제학은 이 사적재가 배제성(excludability)과 경합성(rivalry)을 지닌다고 가르친다. 배제성은 소비자의 지불의사에 따라 재화의 소비를 통제할 수 있음을, 경합성은 한 사람이 어떤 물건을 쓰면 다른 사람이 쓸 양이 줄어듦을 의미한다. 세상에 사적재들이 대부분인 것은 대부분의 재화가 희소해서다.


그런데 이 배제성과 경합성이 없는 재화가 있다. 적벽부에서 말하듯 취하는 것을 막지 않고, 막을 수도 없으며, 누가 얼마를 사용하든 다른 사람의 사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재화들이다. 이런 재화를 공공재(public goods)라고 한다. 예컨대, 국방은 대표적 공공재이다. 휴전선을 지키면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국적, 빈부, 세대, 성별 등과 관계없이 이 서비스를 누린다. 또한 내가 이 혜택을 받는 게 다른 사람들의 혜택을 막거나 줄이지 않는다.


소동파가 언급한 맑은 바람과 밝은 달도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요즈음 지리산 바람을 중국에 파는 기업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나, 보편적으로 보면 바람과 달빛은 여전히 공공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보배로운 창조주의 혜택을 공짜로 누린다.


경제학은 사적재는 그 재산권(property right)을 명확히 해서, 개인과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시장 거래로 배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알려준다. 이렇게 해야 모든 사람이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더 큰 만족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는 번영하고, 정부가 시장을 대신하려는 나라는 가난해진다.


반면 공공재는 배제성과 경합성이 없어 시장에서 가격에 의한 배분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이렇게 가격에 의한 배분이 불가능한 상황을 시장실패라고 부르며, 이를 정부가 개입하여 해결해 왔다. 예컨대, 국방 서비스는 정부가 징병과 납세를 강제해서 집단적으로 제공한다. 경제학은 정부의 역할이 공공재처럼 명백한 시장실패에 국한되어야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소동파가 천 년여 전에 명백하게 이해했던 이 개념을, 경제학자들이 ‘개펄의 능쟁이’ 기어 다니듯 하고, 경제학 배운 사람들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음에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기이한 일이다. 심지어 코로나 백신이 공공재라는 대통령, 여성들의 생리대가 공공재라는 대통령 후보, 의료가 공공재라는 국회의원, 전문 의약품이 공공재라는 약사회장, 자사 개발 코로나 치료제가 공공재라는 대기업 회장 등을 너무나 흔히 본다. 그리고 정책 논쟁에서 툭하면 “〇〇〇은 공공재”라는 논리로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한다. 이런 경제학 개념의 혼돈과 잘못된 이기적 방어기제화로 우리가 사는 근본 문제를 다루는 경제 관련 정책, 법률, 규제, 기준들이 온갖 어울리지 않는 재료와 양념들을 넣은 비빔밥과 같은 양상을 띤다.


비록 새 정부가 출범하지만 이런 무지를 해소하지 못하면 배가 산 위로 올라가는 상황을 반복할 것이다. 그래서 이 통탄할 ‘웃픈’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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