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조주의자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데일리 임팩트 <세상 돌아보기> 칼럼(2023.08.17)
필자가 1970년대 말~80년대 초 대학생이었을 때, 학생운동에 가담한 이른바 ‘의식 있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영희 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등을 읽었다. 필자도 이 책들을 읽으면서 국가와 정치권력의 본질, 그리고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말·행동·삶의 이중성을 아는 계기를 가졌다.
그때 필자가 참여하는 독서회가 있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 갔다 온 복학생이 좌장을 하면서 신출내기인 필자 같은 사람들을 교양·학습하는 그룹이었다. 거기서 이영희 교수의 책들,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 강만길 교수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등을 읽고 토론했다.
어느 날 독서회에서, 좌장인 선배가 “마오쩌둥(毛澤東)이 문화혁명을 하면서 다수 인민을 위해서 당장 조금만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질병의 진료에 집중하고, 암 등 고치기 어렵고 돈이 많이 들며 일부 부유층에만 혜택이 가는 질병에 대한 치료는 미뤄야 한다고 했다.”는 ‘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글을 토론하자고 했다. 그는 마오쩌둥의 이 발언이 “진정한 인민의 영도자가 가진 탁견”이라고 부연했다.
필자는 그 토론에서 “그렇다면 돈 많이 들고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해결에 노력하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은 많은 인민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냐? 그런 것은 부르주아에게만 이익이 된다는 말인데 그것이 항상 옳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반박했다. 또한 “과거 손목시계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아주 돈이 많거나 귀족인 사람들 소수가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며, 대부분 하나 이상 가진 일상용품 중 하나로 변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대중에게 보급되어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예를 들었다.
1970년대 말 우리나라에는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일반 가정에 선풍적인 인기 속에 보급되었다. 필자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고등학생이던 시절인 1960~70년대에 그런 가전제품들의 보급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예로 들기도 했다. 그런 필자의 반박은 그들을 적잖이 당황케 했으나, 태도에 대한 그들의 집중 공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제대로 교양과 학습을 받지 않고 권위에 도전해서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운동의 대오를 거스른다는 비판이었다.
필자는 이런 일들을 당하면서 운동권 주류그룹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필자가 보기에 민주화는 자유로운 토론과 개혁을 통해서 보다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서 정통 주류경제학을 공부하는 데로 방향을 틀었다.
그 당시 운동권 주류에서 이런 논리를 교양하고 학습했던 사람들이 지금 누구라면 다 아는 정치인이거나 시민운동가이거나 또는 좌파의 선생님(?)이 되어 있다. 정부에, 국회에, 검찰과 법원에, 대학에, 시민단체에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운동권 사람이었지만 그 교조적 논리를 거부한 사람들은 민주화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신념을 가진 평범한 시민으로 회사원, 공무원, 의사, 학자, 언론인, 상인, 예술인 등 다양한 직업으로 기존 체제의 일원이 되어 ‘운동권’ 레이블을 뗐다. 그들은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사람조차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높임이나 보상을 받기 원하지 않고, 민주화 운동을 자신의 공로로 자랑도 하지 않는다. 민주화된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들은 지금 좌파 운동권이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지향하는 전체주의·김일성주의·공산주의 체제에 반대한다. 이들은 시장경제체제를 선택해서 번영을 일군 이 나라에서 더 많은 국민이 자유와 번영을 더 평등하게 누리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진심이다.
지금 이들은 군부 쿠데타나 극우파에 의한 체제 전복보다 좌파 전체주의자들에 의한 나라의 병영화와 시장경제체제 와해를 크게 우려한다. 이들은 또한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좌파 운동권과 그 지지자들이 절차적 민주주의에 입각한 선거로 권력을 장악해서 나라를 전체주의화하는 것을 염려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북한 김일성 왕조와 결탁해서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로 구축한 이 나라의 번영과 자유를 와해시키지 않을까 걱정한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국민 분열과 갈등의 핵심은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와 사상의 근본으로 인정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있다. 사실 이는 대한민국이 주적인 북한의 김일성왕조와 대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내에서 같은 갈등이 증폭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베트남의 공산화 이전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정권과 남베트남의 베트콩 세력이 연합해서 남베트남을 전복시켰던 일을 연상시키는 구도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느 길로 들어설 것인가? 내년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와 그 이후 있을 차기 대통령 선거는 이를 좌우할 엄중한 국민적 선택의 시간이 될 것이다. 만일 좌파 전체주의자들이 다시 득세하는 선택이 이루어지면 이 나라의 자유와 번영은 좌초를 향할 것이다. 반면 이 교조주의자들을 퇴출시키면 재도약할 새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 엄중한 기로에 우리가 서 있다. 우리의 선택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