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따뜻함
첫 책을 쓰는 건 참 힘들었습니다.
출근과 육아로 주중 저녁과 주말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출간을 준비하는 도중 이직 또한 겹쳤어요. 그래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출퇴근길 지하철이 유일했습니다. 금방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회를 잡고 싶어 붐비는 지하철에서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허리에 힘을 꽉 주어 출퇴근 2시간 동안 매일 글을 썼습니다. 다시 떠올려보아도 참 힘든 날들이었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감사하다는 독자분들의 후기를 볼 때마다 고생해서 책을 쓴 보람을 느낍니다. 얼마 전 DM으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주셨던 독자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책을 읽고 도움이 되어 직접 쓰셨다는 블로그의 후기도 보여주셨어요. 저보다 제 글에 애정을 가지고 여러 번 읽어 내려간 흔적이 보여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블로그에 정성스럽게 작성해 주신 후기의 글 중 아래 문구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작가의 글에서는 ‘과정’을 지켜볼 줄 아는 인내심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에 흔하지 않은 것입니다. 특히 회사라는 맥락에서는요. 우리는 대부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매년 하는 평가에서도 측정가능한 결과가 중심이 됩니다. 결과 지향적으로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일잘러의 덕목으로 언급되고, ‘결과로 말하는 것’이 프로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이런 말들에 누구라도 쉽게 반대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어느샌가 누군가의 과정을 지켜봐 주지 않게 된 것 같아서요.
어릴 때는 사람들이 과정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아이가 뒤집거나 걸으려고 할 때, 누구라도 과정을 지켜봐 주고 또 응원해 줍니다. 당장 가시적인 결과가 없더라도요. 과정을 지켜봐 주는 어른들의 관심과 응원이 어린아이를 걷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어린아이가 무언가 처음 해 볼 때, 허무맹랑하지만 멋진 장래 희망을 말할 때,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해 보고자 할 때, 대부분 앞으로 다가올 과정에 조언과 응원을 보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과정에 신경을 끄기 시작합니다. 결과에는 모두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가지는데 말이죠. 누군가가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애를 쏟았을지, 어떤 실수를 발견했고, 다음번에 얼마나 잘할 수 있을 지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누군가가 무언가에 성공했을 때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지, 얼마나 많은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었을지에는 무관심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대부분 그저 ‘어차피 안 될 일’이라는 냉소적인 평가나, ‘하루아침의 벼락 성공’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과정을 건너 짚는 실수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알고 있어요. 누군가로부터 과정에 대한 인정을 받을 때 우리는 큰 위안을 얻습니다.
작년이었을까요.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하는 일에 몸과 마음이 지쳐 신년운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의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고, 사주를 봐주시던 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고 가장 먼저 한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열심히 사셨네요”
내가 이룬 것들의 결과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생했다’는 별 다를 것 없는 이 말이 힘든 그 시기에 제가 들어본 가장 큰 위안이었습니다. 당시 여러 문제가 겹쳐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요. 일부의 문제에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문제에서는 원하지 않던 갈등이나 또 다른 문제에 휘말려 수개월간 고생 했습니다. 딱히 자랑할 만한 결과는 없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난 몇 년의 고군분투를 누군가는 알아준다고 생각하니 큰 위안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과정을 인정해 준 누군가의 가벼운 말 덕분에요.
애플에서 일하면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티브 잡스는 잠시 고민을 하다 이런 말을 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 일한다고 하면 누군가의 일을 바로 대신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개월이나 수년간 일을 해야 한다면 절대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어느 순간 생각했다고 합니다. 내가 결과를 당장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도와줘야 그 사람이 과정에서 실수하고 배울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스티브 잡스의 이 말 또한 사람들이 더 좋은 과정을 겪을 수 있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실수와 실패를 서로 공유하는 워크숍이나 모임도 많이 보이는데요. 비슷한 맥락의 관심이지 않을까 해요.
사실 누군가의 과정을 지켜봐 주는 건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바쁘고, 자신의 과정을 버텨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가끔은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지켜보듯, 어린 학생들의 시행착오에 응원을 보내듯, 주위 사람들의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저 또한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웠습니다. 회사에서는 항상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나의 과정에 인내심을 가지고 끝내 더 나은 과정을 겪어 좋은 결과에 다다를 것이라고 믿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힘든 과정을 버틸 수 있었어요. 요즘 저도 주위 사람들의 과정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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